“소프트웨어 문제 있지만 차량은 문제 없어”…직영 정비 사업소 뒤로 숨는 자동차 제작사

“차량 소프트웨어 간 충돌이 생긴 것 같지만, 차량엔 문제가 없다.”

최근 르노삼성 SM6 가솔린 모델 주행 중 시동이 꺼지는 상황을 겪은 문모(27) 씨가 직영 정비 사업소에 들러 차량 점검을 받은 후 들은 첫마디다. 정비 사업소 직원은 “원인을 명확히 알 수는 없다”면서 “차량엔 이상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문 씨는 “소프트웨어 충돌 발생은 그 자체로 문제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아무런 조치를 받지 못한 채 돌아서야 했다. 그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문제가 생기면 바로 처리해주겠다던 판매 영업직원은 연락도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동차는 고가의 소비재임에도 자동차 제작회사의 사후 정비 서비스는 그에 미치지 못해 소비자 불만이 커지고 있다. 구입부터 유지까지 연평균 940만원 넘는 비용이 발생함에도 자동차 결함으로 인한 교환·환불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정비조차 받기 어려운 탓이다.

27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지난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소비자분쟁해결기준 개정안을 내고 차량 중대결함 뿐만 아니라 사용·가치·안전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일반결함도 동일한 하자가 4회 발생되면 교환·환불이 가능하도록 했다. 기존 중대결함에 한정했던 기준을 강화한 셈이다.

하지만 개정안 적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반결함이 발생했다는 것을 자동차 제작회사 사업소에 입고해 결함 내용을 증명 받아야 하는 데 사업소가 결함을 인정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 전문가들은 “차량 결함을 알아보기 위한 1차 단계인 직영 정비 사업소 입고부터 난관”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지난 6월 17일 한국GM 말리부 1.5ℓ LTZ 모델을 구입한 한모(30) 씨는 차량 인수 5일 만에 핸들과 오른쪽 바퀴에서 찌걱거리는 소음이 들려 한국GM 직영 정비 사업소 입고를 요청했다. 한 씨는 차량 인수 1주일 만에 강원도 원주시의 한국GM 직영 정비소에 전화를 걸었지만, 8월 말에나 입고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업소 입고 이후 차량 정비를 받아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난해 12월 현대차 아반떼AD를 구매한 김모(27) 씨는 핸들을 돌릴 때마다 딱딱거리는 소리를 듣고 곧장 사업소에 입고했다. 사업소 담당 직원은 “전동식 파워 스티어링(MDPS)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MDPS를 갈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MDPS를 교체하자 이번엔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주행 신호를 받고 이후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자마자 엔진 회전수가 급격히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김 씨는 “사업소는 일시적 현상이니 곧 나아질 것이라는 말뿐이었다”면서 “운전대를 잡기가 무서워 이달 차량을 처분했다”고 말했다.

수입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지난 8월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블루텍 4륜구동 모델을 구입한 김모(32) 씨는 고속도로 주행 중 시동이 꺼지는 중대 결함을 겪었다. 근처 사업소에 즉시 차량을 맡겼지만, 사업소 담당 직원은 이후 “엔진 쪽 케이블 수리를 마쳤다”면서 “재발할 수도 있으니 문제가 생기면 다시 방문해라”고 말했다.

자동차 판매 전시장 및 대리점에서 판매한 차량이 결함 등 문제가 발생하면 담당 한국지사 및 자동차 제작회사는 적극 개입해 소비자 불만을 해소해줘야 한다. 다만 한국지사 및 제작회사의 적극 개입은커녕 담당 정비 사업소 뒤에 숨어 문제가 없다고 일관하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정비 사업소는 차량 문제보단 소비자의 기능 이해부족으로 차량 결함 원인을 돌리는 일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8월 31일 SM6 가솔린 모델을 인수한 박모(35) 씨는 차량 운행 일주일 만에 주행 중 시동꺼짐을 겪어 차량 점검을 받았다. 그는 “오토스톱 안전 설계에 대한 이해부족이라며 오토스톱 기능을 사용하지 말라”는 답변만 듣고 돌아서야 했다.

박 씨는 “정비 사업소 직원은 차량 점검보단 안전띠를 풀거나 뒷좌석에서 물건을 꺼내거나 하면 시동이 꺼질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몸무게가 80㎏ 이하면 종종 그런 일이 발생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동승자가 있어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면서 “몸무게가 가벼우면 아령이라도 들고 타라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병일 자동차 명장은 “자동차에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면서 제어장치 쪽에서 결함이 발생하는 사안이 많아졌다”라며 “이상 현상이 3~4초 동안 지속되지 않는 이상 자가진단 스캐너로 이것을 확인할 수 없어 사업소는 문제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스캐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제조사는 차량 전체 무상 수리나 리콜 대책을 하루빨리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자동차 분야 전문 소비자 불만·피해 상담 창구가 개설 등 소비자 불만과 피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자동차 제작회사가 정비 사업소 뒤로 숨는 행위”라면서 “문제를 지적하고 명확한 해답을 줘야 할 정비 사업소가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선 아무것도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나서서 자동차 제작회사가 결함을 증명할 수 있는 체계가 만들어 지는 것이 이상적”이라며 “자동차청을 만드는 등의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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