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부문 분사 후 크레인 낙상사고만 두차례…“노동유연화 정책과 함께 재교육 시스템 갖춰야”

최근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안전사고가 연달아 발생하며, 사고 가해자로 지목된 모스 소속 직원들과 정규직 노동자들 간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사진은 울산 동구 방어동 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노동자들이 퇴근하는 모습. / 사진=박성의 기자

 

“쇳덩이가 하늘에서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 ‘못쓸 모스’라는 소리가 괜히 나왔겠나?” 


현대중공업 설비전문 자회사 모스(MOS)가 잇따른 안전사고로 비난을 받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골리앗 크레인 조종수와 신호수 등을 모스로 분사시킨 첫날 압사 사망사고가 발생한데 이어, 19일에는 LNG(액화천연가스) 모스형 관이 이동 중 도크 바닥으로 추락했다.

사측은 단순 안전사고라며 직원 동요를 경계하고 나섰다. 하지만 현장 근로자들은 현대중공업이 경비 절감을 위해 무리하게 크레인 비숙련공을 모스 직원으로 채용한 게 화를 불렀다고 지적한다. 현대중공업이 노동 유연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안전교육 등을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21일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에 따르면 올해 들어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현장 근로자가 사망한 사고만 9차례다. 사고 소식이 수차례 이어지며 사측이 안전점검을 하는 등 분위기 전환에 나섰지만 최근 들어 사고가 또 다시 발생했다. 지난 1일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부 하청업체 소속 박모씨가 울산 조선소 골리앗 크레인 탑재물에 깔려 숨졌다.  크레인 밑에서 의장품 설치를 위한 자재 절단 작업을 하던 박모씨를 크레인에 연결돼 있던 탱크가 떨어져 덮친 것이다. 

 

사측은 단순 안전사고라 말했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이 사고가 앞선 사고들과 다른 경우라며 격양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고를 일으킨 크레인 조종수와 신호수가 현대중공업 모스의 하청업체 직원인 탓이다.

모스는 현대중공업이 각 사업본부 산하의 설비지원 부문을 떼어내 만든 자회사다. 수주 절벽에 직면한 현대중공업이 비용 절감을 위해 설비 부문을 통합한 것인데, 노조는 파업을 앞세우며 이를 반대했다. 분사가 시행되면 기존 현대중공업 본사에서 받던 급여와 복지혜택이 줄어든다는 이유에서다.

노동조합 반대에도 현대중공업은 분사를 고집했다. 분사를 거부한 정규직 근로자 자리는 비정규직 근로자로 채웠다. 1일 사고를 유발시킨 크레인 조종수와 신호수도 이 같은 조처로 근무하게 된 협력업체 근로자들이었다. 정규직 근로자들은 고숙련을 요하는 작업에 무리하게 미숙련 재하청인원을 투입한 것이 화근이라고 말한다.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에서 17년을 근무한 김지한(익명·40)씨는 “크레인 작업은 단순 조종이 아니다. 조종수와 신호수가 작업의 큰 그림을 그리고 소통해야 한다”며 “하청업체 직원이 조종방법 등을 알더라도 현장과 작업에 대한 이해가 정규직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크레인 작업을 사측이 너무 쉽게 생각해 (사고가)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19일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2도크 LNG 모스형 관 추락 현장 모습. / 사진=현대중공업 노조 홈페이지

 

19일에는 1일 발생한 사망사고 현장과 동일한 울산 조선소 2도크에서 크레인 사고가 다시 발생했다. 크레인에 연결돼 있던 LNG 모스형 관이 추락한 것이다. 크레인 밑 작업자가 없어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다. 다만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홈페이지에 사고현장을 찍은 사진과 함께 이날 크레인 조종수 역시 모스 소속이었다는 글이 올라오며 정규 노동자들의 ‘모스 포화’가 더 격화됐다.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관계자는 “같은 소속 직원에 의한 사고가 같은 장소에서 발생한 것을 우연으로만 보기 어렵다. 현장 노동자들이 ‘모스 저주’라며 불안해하는 게 사실”이라며 “협력사 직원을 차별하는 것이 아닌 모든 근로자들의 생명이 걸린 문제다. 정규 노동자들의 거듭된 경고에도 사측이 무시한 결과 안전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조선 수주가 급감한 상황에서 현대중공업이 추진 중인 분사 및 직영의 고용 유연화 정책을 무조건 탓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다만 향후 안전사고가 재발할 경우 모스 사례에서 볼 수 있는 비정규직 차별 현상이 조선소 내에서 더 격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충분한 재교육 시스템이 수반돼야 한다는 분석이다. 


김보원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는 “국내 조선업계에 깊게 뿌리내린 하청과 직영업체 간 차별대우 문제는 경영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조선소 직영세력들이 기득권세력이 돼버린 영향도 있다”며 “외주에도 (직영 직원만큼) 능력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직영의 노동 유연성은 높이는 게 맞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직영 노동자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재교육 시스템이라며 경영진은 안전망을 먼저 갖춰주고 노동유연성을 요구해야 한다. 충분한 재교육 시스템도 마련돼야 한다. 사용자가 노동계 우려사항을 불식시킬 수 있는 보완적인 제도를 만들어야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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