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롯데서 총수 일가 퇴출 가능성 제기…롯데 "뼈 깎는 심정으로 변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0일 오전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뉴스1

 

2000억원대 배임·횡령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신동빈(61) 롯데그룹 회장이 20일 검찰에 출석했다. 검찰이 강도 높은 조사를 예고한 가운데 롯데 총수는 최악의 위기 앞에 놓이게 됐다.

 

신 회장은 이날 오전 9시 19분께 검은색 제네시스 차량을 타고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했다. 그는 심경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검찰 수사에 성실히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주요 혐의에 대한 연이은 질문에 "검찰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다"는 말을 세 차례 반복한 뒤 검찰 청사로 들어갔다.

 

검찰은 신 회장이 각종 경영 비리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신 회장은 1997년 그룹 부회장에 오르고, 2004년부턴 정책본부장으로 근무하며 사실상 한국 롯데를 총괄했다. 앞서 검찰 관계자는 "조사할 양이 많다"며 신 회장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예고했다. 사실상 그룹 경영 비리 전반을 수사할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이 일본 계열사로부터 수년 동안 받은 급여 500억 원에 대해 검찰은 횡령 혐의를 적용할 방침이다. 신동주(62)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한국 계열사에서 수백억 원의 급여를 챙긴 것과 같은 혐의를 적용했다. 롯데가 지난해 초 경영권 분쟁 이전까지 한국·일본 계열사를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이 분리 경영한 만큼 두 사람이 실제로 근무하지 않았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아울러 ▲롯데케미칼 원료 수입 과정에서의 일본 롯데물산에 통행세 지급 ▲중국 홈쇼핑업체 럭키파이 인수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 등에 개입해 회사에 고의로 1500억 원 이상의 손실을 끼쳤다고 보고 배임죄를 적용할 방침이다. 이밖에도 ​신 총괄회장 3000억 원대 탈세 의혹 ​신 전 부회장 부당 급여 지급 ​롯데건설 비자금 조성 의혹 등 비리 전반에 대해서도 조사할 예정이다.

 

검찰은 그룹 재무를 총괄했던 고 이인원 정책본부장(부회장) 자살 이후 경영 비리와 신 회장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검찰 관계자는 이 부회장 사망 이후 "사람에 의존해 수사하지 않았다"며 "많은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에 (수사에) 중대한 지장 있는 것 같지 않다"고 신 회장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신 회장에 대한 조사를 끝으로 검찰은 신 회장을 비롯해 그룹 경영에 관련한 총수일가 전원이 재판에 넘기며 다음 달 초로 예정된 서울고등검찰청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 이전에 롯데 수사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신 회장을 사법처리하면서 롯데 수사를 (계속) 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검찰은 신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여부에 대해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영장 청구에 따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돼 수사 외적인 고심이 깊은 것으로 전해졌다. 우선 신 회장 혐의 자체가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는 상황에서 자칫 법원이 영장 청구를 기각할 경우 검찰로서는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더구나 일본 계열사와 관련된 주요 혐의에 대해선 주요 자료도 확보하지 못한 상황으로 전해졌다.

 

영장이 발부될 경우엔 후폭풍이 더욱 거셀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총수일가가 일본 롯데에서 퇴출돼 경영권을 상실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롯데는 여타 다른 재벌들과 달리 총수일가 지배력이 매우 불안정하다. 일본에 모태를 둔 구조가 그대로 유지돼 일본 롯데가 수십 배 규모의 한국 롯데를 지배하는 형태이다. 또 일본 계열사 지주회사격인 롯데홀딩스는 일본 주주가 과반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신 회장이 경영권을 장악한 후 이 같은 구조를 바꾸기 위한 첫 단계로 호텔롯데 상장을 추진했지만 올해 초 무산된 바 있다. 

 

신 회장이 구속될 경우 롯데홀딩스 일본 주주들이 신 회장을 해임할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가 재계에선 흘러나온다. 현 일본 경영진이 신 회장 측 인사인 것과 별개로 신 회장이 자리를 보존하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더구나 경영에 참여 중인 총수일가 전원이 재판에 넘겨진 상황에서 신 회장을 대체할 총수일가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에선 기업에서 경영진에 대해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다. 비리가 발생할 경우 자진 퇴임이나 이사회가 경영진을 해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례로 올해 세븐일레븐 모회사 일본 세븐앤아이홀딩스 회장은 세습 경영을 시도하다 주요 주주의 반발로 자진사퇴했다. 지난해 회계부정으로 파문이 불거진 도시바에선 사장 등 주요 경영진이 줄사퇴하기도 했다.    

 

이처럼 영장이 발부될 경우 재계 5위 그룹 총수일가가 그룹에서 내쫓길 수 있다는 점에서 검찰은 물론 정권 자체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 내 시각만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인 혹은 외부적인 의견도 경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롯데는 신 회장 출석 직후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 깊이 사과드린다"는 그룹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롯데는 "고객과 협력사 피해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롯데의 미래 역량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임직원들이 힘을 모으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이번 사태를 통해 더욱 큰 책임감을 갖고 사회공헌에 앞장서고 국가경제에 기여하겠다"며 "신뢰받고 투명한 롯데가 될 수 있도록 뼈를 깎는 심정으로 변화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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