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완성차사 품질문제에 모르쇠 대응…전문가 “차 결함은 안전과 직결, 리콜 강제안 도입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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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배터리 폭발과 자동차 엔진결함. 어느 것이 소비자 안전에 치명적일까. 회사 실적을 좌지우지하는 주력 제품이 품질에 하자가 생겼을 때 국내 자동차와 정보통신(IT) 업체의 대응 방식이 크게 갈렸다.  

삼성전자가 야심작 갤럭시노트7에서 배터리 발화가능성이 발견되자 재빠르게 리콜결정을 내린 반면, 현대차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 5개사는 주력 차종에서 발견된 제품하자를 무상수리 조처로 대응했다.

자동차 가격은 휴대전화의 수백 배에 달한다. 무엇보다 자동차 결함은 생명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완성차사에 리콜을 강제할 ‘한국판 레몬법’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 2일 갤럭시노트7에서 배터리 발화가능성이 발견되자 오는 19일까지 해당제품 구매 고객 전원에서 환불 또는 계약을 취소해주는 리콜을 단행하기로 했다. 증권가에서는 갤럭시노트7 리콜 비용 예상규모만 최소 7000억원에서 최대 1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이 같은 리콜결정을 두고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품질악재로 인한 재무적 손실은 불가피하지만, 국내 대기업은 리콜에 인색하다는 편견을 불식시켰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소비자 신뢰도 제고에도 도움을 줄 것이란 평가다.

반면 국내 자동차사 고객들은 삼성전자의 이 같은 결정에 부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삼성전자의 빠른 리콜 결정이 현대·기아차와 르노삼성, 쌍용차, 한국GM이 주력 모델에서 발생한 엔진 및 부품 하자를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무상 수리로 대응한 것과 대조되는 탓이다.

현대·기아차는 친환경차 라인업에서 말썽이 발생했다. 현대차 아이오닉 하이브리드와 기아차 니로 하이브리드 모델에서 인젝터(injector) 불량이 발견된 것이다. 

인젝터란 연료를 엔진 연소실 내로 분사하는 부품이다. 인젝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엔진 회전이 불안정해져 차량 진동이 심해지거나 가속력 저하가 발생할 수 있다.

올해 초부터 아이오닉과 니로 동호회를 중심으로 이 같은 문제제기가 이어졌지만, 기아차만이 품질문제를 인정했다. 기아차는 지난 7월 5일부터 올해 3월 10일에서 6월 22일까지 생산된 니로 7847대에 한해 부품 교체를 진행하기로 했다.

문제는 현대차였다. 니로와 아이오닉은 플랫폼과 엔진을 공유하는 ‘쌍둥이차’다. 아이오닉과 니로는 같은 인젝터를 장착했다. 니로의 문제가 아이오닉과 직결될 수밖에 없음에도 현대차는 끝까지 품질하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본지가 지난 7월 25일 아이오닉 인젝터 불량문제를 보도한 이후에야 아이오닉 문제 차량에 대해 부랴부랴 무상 교체를 결정했다.
 

지난 7월 30일 장홍기(43·가명)씨 소유 티볼리 디젤 모델에서 주행 중 누유 현상이 발생했다. / 사진=시사저널e

 

쌍용차는 주력 모델 티볼리 디젤 품질결함을 쉬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지난해 생산된 모델에서 연료호스 불량문제가 발생, 기름이 새는 현상이 빚어졌다. 쌍용차 역시 이 같은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정비소에만 무상교체 공문을 하달하고 고객들에게 고지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티볼리 디젤을 구입한 장홍기(43·가명)씨는 지난 7월 30일 처가에 가던 중 누유현상을 경험했다. 장씨는 다음날 차를 정비소에 입고 시켰다. 정비소 직원은 “본사에서 공문이 내려와 이미 파악하고 있던 문제”라며 “별 일 아니니 예약해놓으면 부품 교환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연료호스가 터진 뒤에야 무상수리가 시행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본사가 누유문제를 사전에 티볼리 디젤 차주 전원에게 알렸다면 점검받을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며 “옷 한벌 사도 하자가 발생하면 점원이 사과하고 수선하거나 값을 물어준다. 누유 탓에 화재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면 쌍용차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르노삼성과 한국GM의 품질문제 대처는 더 심각하다. SM6 LPG 모델과 한국GM의 말리부 1.5 터보 모델에서 주행 중 시동이 꺼지는 결함이 발생한다는 제보가 줄을 잇고 있지만 리콜은커녕 무상수리 등의 대처방안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국토교통부 교통안전공단 자동차리콜센터에는 7월 30일부터 8월 25일까지 약 한 달 사이 신형 말리부 시동 꺼짐 신고가 16건 접수됐다. 신형 말리부에서 나타나는 시동 꺼짐 현상 대부분이 내리막길 주차 시 후진(R) 변속 과정에서 나타났다.

르노삼성의 SM6 LPG 모델도 말리부와 유사한 증상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SM6 인터넷 동호회 결함신고 게시판에 ‘LPG 모델 주행 중 시동이 꺼졌다’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증상은 동일하다. 신호대기 상황이나 주행 중 갑자기 차량 시동이 꺼졌다는 것이다. 이들 모두 르노삼성 사업소에 차량을 입고시켰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으니 그냥 타라”였다.

지난 6월 주행 중 시동이 꺼져 사업소를 찾은 강진명씨는 “사업소에선 점검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만 말했다”면서 “차량 10대를 만들면 그중 몇 대는 이상이 생기기 마련이라며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했으니 그냥 타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동 꺼짐 현상은 생명이 걸린 문제”라며 “너무 화가 나 1인 시위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취재결과 한국GM과 르노삼성 모두 자사 품질연구팀을 통해 이 같은 결함사실을 확인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모두 “소비자 안전에 직결된 문제인 만큼 대처방안을 고심하겠다”고 밝혔지만 보도 후 한 달이 흐른 이달까지도 뚜렷한 대처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실정 탓에 26일부터 열리는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는 ‘한국판 레몬법’이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레몬법이란 현저하게 결함을 가진 자동차를 구입한 소비자가 일정한 요건을 충족한 경우 교환·환급 등 피해 소비자에 대한 구제수단을 규정한 미국 법이다. 한국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과 달리 보상에 대한 강제성을 가진다.

정의당에선 소비자기본법 개정안을 냈다. 사업자가 국내에서 판매하는 모든 동일한 제품에 대해 국외에서 결함이 발견돼 리콜을 실시하면 국내에서도 똑같이 리콜을 실시토록 하는 법안이다. 이른바 ‘글로벌 호갱 방지법’으로 불린다. 자동차사가 리콜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강제하겠다는 취지다.

전문가들도 한국판 레몬법 도입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 자동차 소비자 권익이 생명권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자동차 품질문제에 보다 엄격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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