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한진항만에 정박한 배 ‘0척’…“정부 예상 못 했나 원망스러워”

5일 부산 강서구에 위치한 부산신항만을 찾았다. 사진은 한진해운 안벽 크레인 정상에서 바라본 야드장치장. / 사진=박성의 기자

 

제 12호 태풍 남태운이 부산을 스친 5일. 새벽 적지 않은 비가 뿌려진 탓에 공기는 습했고 하늘은 잿빛이었다. 인적 없는 부산역, 길게 늘어선 택시 중 하나를 잡아타고 부산신항만에 가자고 택시기사에게 말했다. 낯선 서울말을 들은 기사가 한숨을 한번 뱉었다. 큰형이 부산항에서 일한다는 택시기사 김태만(42)씨는 “초상집인데 거기. 가서 또 괜한 사람 속 뒤집지나 마소”라며 운전석 창문을 내렸다.


부산에서 항구는 자존심이다. 드넓은 남해를 건너 온 온갖 무역상들이 부산항을 통해 한국에 짐을 내려놓고 또 실어간다.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에서 부산항은 늘 문전성시를 이뤘다. 적어도 지난달까진 그랬다. 채권단이 추가 지원을 중단하면서 지난달 26일부터 부산항은 활력을 잃었다.

부산 강서구 부산신항만 부근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 30분. 항만 노동자들이 많이 드나드는 돼지국밥집에서 이른 점심밥을 먹었다. TV에는 부산지역방송이 4일 해양수산부가 한진해운 법정관리 여파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보내고 있었다.

브라운관에서는 김영석 해양수산부 장관이 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한진해운 대책회의에서 "정부는 이번 사태가 물류대란으로 이어져 수출 등 실물경제로 전이되지 않도록 대응할 계획"이라며 "업계 피해를 지원하기 위해 관계부처와 유기적으로 공조해 가능한 정책수단을 모두 동원하겠다"고 밝힌 내용이 흘러나왔다.

선풍기 앞에서 파리채를 휘두르며 TV를 보던 식당주인 박차양(62)씨는 “일 다 벌여놓고 저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나”며 혀를 찼다. 3년 전부터 한국에 와 국밥집에서 일하고 있다는 조선족 김향화(42)씨는 “자세히는 몰라도 요즘 항만 노동자들이 소주 먹으며 그렇게 나라를 욕한다”고 말했다. 

 

한진해운 물류센터 관계자는 법정관리 여파 이전에 받아놓은 일거리가 있었던 덕분에 최근 작업량이 급감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 사진=박성의 기자

 

부산신항만 입구에서 10분 정도 걸어 한진해운 신항만물류센터로 향했다. 일감이 없어 고요할거란 예상은 빗나갔다. 분주했다. 트럭 수대가 연신 센터를 들락거렸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소식을 들은 화주들이 해체작업을 요청한 것일까. 화물을 싣고 온 트럭 운전기사는 “물류센터는 (한진해운 법정관리 전부터) 일감이 남아있어서 당장 손가락 빨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작업량은 평년 수준보다 조금 적다고 말했다.  

물류센터 건너편에 위치한 한진해운 신항만 컨테이너 부두로 향했다. 물류센터와 불과 도로 하나 낀 거리지만 분위기는 극명히 갈렸다. 어느새 날씨는 화창하게 갰지만 광활한 부두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드문드문 트럭이 들어왔지만 한진해운 부두가 아닌 다른 부두로 향했다.

5일 해양수산부와 한진해운에 따르면 현재 세계 각국 항만에서 입출항이 거부되거나 압류된 선박은 총 79척(컨테이너선 61척, 벌크선 18척)이다. 한진해운 전체 보유 보유선박(145척) 절반을 넘어섰다. 이 탓에 평소 부산항만 내 가장 분주한 곳으로 손꼽혔던 한진해운 부두는 사람도 배도 찾기 어려운 ‘무인도’ 처지가 됐다.

 

5일 오후 2시 한진해운 컨테이너 부두에서는 단 한척의 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사진은 한진해운 보유한 안벽 크레인. / 사진=박성의 기자

 

오후 2시 한진해운 부두에 정박한 배는 없었다. 4일 들어왔던 1만TEU 규모의 한진해운 소속 ‘HANJIN GERMANY’호는 5일 정오 부두를 떠났다. 한진해운 신항만 측에 따르면 11일까지 부두에 들어올 한진해운 선박은 없다. 해운업이 성수기일 때는 수요일에서 금요일 사이 많은 배가 몰려들었다. 항만 관계자는 이 같은 ‘부두의 침묵’이 생경하다 했다.

한진해운 신항만에서 5년 간 일했다는 노동자는 “일이 없는 날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이렇게 사람도 배도 없는 부두를 보기는 낯설다”며 “바닷소리도 간간히 들려오고 사람도 없으니 풍경만 보면 좋지 않냐. 그런데 마음이 좋지 않다. 당장 옆 부두만 보더라도 배가 저렇게 떠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한진해운 부두 바로 옆에서는 세계 1위 해운사 머스크 소속 용선이 한창 짐을 내리고 있었다.

같은 시간 정부와 금융계는 한진해운 사태에 대해 미묘한 온도차를 보였다. 윤학배 해양수산부 차관이 한진해운 법정관리 여파를 의식해 거점항만 지정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반면,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물류대란 사태는 한진해운의 비협조로 발생한 예상치 못한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5일 부산항에서 만난 해운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금융계가 연일 한진해운과 관련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그 중 한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조양호 회장이 잘한 것도 없지만 정부와 금융계가 이 정도 파장도 예상하지 못했다면 무능력의 방증이다. 법정관리 결정 전 한번이라도 부산항에 와서 이야기도 들어보고 했다면 이럴 수 있었을까 싶다”고 토로했다.

항만을 둘러본 뒤 한진해운 부두에 위치한 탠덤(Tandem) 방식(20피트 컨테이너 4대, 40피트 컨테이너 2대 동시 작업 방식) 안벽 크레인에 올랐다. 안벽 크레인은 접안한 선박의 짐을 옮기는 역할을 한다. 한진해운 부두 내에는 42M 높이 안벽 크레인 12대가 있다. 꼭대기에 오르면 부두 내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 야드장치장 아래 노란색의 무인 자동화 야드크레인이 보였다. 그 밑에는 배에서 내려진 컨테이너들이 늘어서 있었다. 중간 중간 트럭 수대가 와서 컨테이너를 실어갔다. 평소 같으면 트럭 수 십대가 줄지어 있어야 하지만 법정관리 이후 트럭이 한진 야드장치장에 올 일은 줄었다.

푸른색 한진 컨테이너 앞에 위치한 트럭들은 한진해운을 불신한 화주들 부름을 받고 왔다고 했다. 고요한 한진해운 야드장치장, 트럭에서 내린 인부들은 한진해운 컨테이너에서 급히 물건을 빼 현대상선이나 다른 해운사로 물건을 옮기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사람 기척 하나 없이 ‘철컹 철컹’ 소음만이 한진해운 신항만에 울렸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