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평성 어긋나는 뒤죽박죽 건보료 부담…건보료 부과체계 소득중심으로 개편을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 대표가 지난 7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불공평한 건강보험료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다'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지난 20142월 송파구에 사는 세 모녀가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갖고 있던 전 재산인 현금 70만원을 집세와 공과금으로 놔두고 번개탄을 피워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세상이 떠들썩했다. 큰딸은 만성 질환을 앓고 있었고, 어머니는 실직으로 인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세 모녀는 부양의무자 조건 때문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고, 소득이 없는 데도 수천만원대 전세를 살고 있다는 이유로 매월 약 5만원에 달하는 건강보험료를 꼬박꼬박 내야만 했다.

 

세 모녀 자살 사건 이후 건보료 부과체계에 대한 논란도 한층 뜨거워졌다. 서민들은 소득이 없어도 재산, 자동차, 가족 수에 따라 건보료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고소득층은 금융, 임대, 연금, 양도소득 등 온갖 혜택을 누리면서도 단지 피부양자란 이유로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불합리한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졌다. 건보료 부과체계를 소득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비판이 빗발쳤다. 19대 국회에서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을 비롯한 다수의 야당 의원들이 건보료 부과체계를 소득중심으로 개편하는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19대 국회 임기 만료와 폐기됐다.

 

국민건강보험법은 1999년 국민보건을 향상시키고 사회보장을 증진시키기 위해 제정됐다. 국민의 질병∙부상에 대한 예방∙진단∙치료∙재활과 출산∙사망 및 건강증진에 대해 보험급여를 실시하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은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모든 국민을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로 나눠 대상으로 두고 있다. 그 가족 등은 피부양자로 적용된다. 건강보험료는 직장가입자의 경우 표준보수월액을 기준으로 정한다. 지역가입자는 소득∙재산∙생활수준∙직업∙경제활동 참가율 등을 참작한 부과표준소득을 기준으로 세대단위로 정한다.

 

◇ 불합리한 건보료 부과체계 개선 움직임 봇물

 

20대 국회 개원과 함께 야당이 주축이 돼 불합리한 건보료 부과체계를 뜯어고치기 위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정부가 일부 계층의 눈치를 보느라 개편 작업을 미루고 있는 실정이다.

 

건보료 부과체계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은 건강보험 도입 때부터 있어 왔다. 정부는 부과체계 개편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그러나 일부 계층의 반발에 휩싸이며 전면 백지화됐다. 정부의 논의 중단에 대해 고소득층의 부담 증가와 연말정산 파동에 대한 부담 때문이란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원칙적으로 사회보험에서 보험료 부과는 능력에 따른 부과에 기초하고 있다. 능력은 소득을 의미하지만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는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에만 건보료를 부과하고 있는 반면, 지역가입자는 모든 종류의 소득에 부과하고 있다. 이에 지역가입자의 건보료에 대한 민원은 끊이지 않고 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지난 6 28일 불공평한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를 개편하기 위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 및 공정성을 강화하고 보험료 부과기반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윤 의원은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간 건보료 산정방식 차이로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됐다고 말했다. 지역가입자의 경우 소득 외에도 자동차, 재산뿐만 아니라 가족 나이와 성별, 가구원수도 따져가며 건보료를 부과해왔다. 은퇴 후 소득이 없지만 3억원짜리 집 한 채를 소유하고 있는 지역가입자의 경우 이 재산에만 건보료 12만원이 부과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와 달리 직장가입자의 경우 임금소득으로 건보료를 부과한다. 임금소득 외에 종합소득이 연간 7200만원을 넘지 않으면 건보료를 부과하지 않는다이 때문에 이자소득, 배당소득, 임대소득 등 적지 않은 종합소득에도 불구, 건보료를 납부하지 않는 고소득층이 있다. 피부양자의 경우에도 연소득 4000만원 이하일 경우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재해 건보료를 면제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소득중심으로 보험료 부과체계를 개편하고, 보험료 부과대상 소득범위를 근로소득 이외에 양도∙상속∙증여소득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게 윤 의원의 설명이다.

 

양승조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 7월 소득중심으로 건보료를 부과하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국민의당도 향후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논의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택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간사는 정부는 여전히 낮은 소득 파악률을 근거로 부과체계 개편에 반대하고 있다구태의연한 변명 대신 향후 임대소득 과세 등 미비한 조세 파악률을 어떻게 제고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더민주와 정의당이 제시한 소득중심 부과체계 개편방안은 가입자간 형평성을 제고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고소득자의 부담을 높이고, 저소득자의 부담을 낮춰 보험료의 소득 역진성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 방향에 대해서는 소득중심의 단일 보험료 부과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더민주는 직장, 지역 등 8가지로 구분된 차별적 부과체계를 폐지하고 소득을 단일 기준으로 삼아 건보료를 부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은 지난 4.13 총선에서 개편 필요성을 인정했지만 다양한 소득원 파악이 쉽지 않다며 미온적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지난달 4일 더민주는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안에 대한 모의 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더민주에 따르면 지역∙직장가입자 등으로 나뉜 현행 건보료 부과체계를 폐지하고 소득을 기준으로 매길 경우 보험료는 20% 낮아지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료율은 현행 6.07%에서 4.87% 1.2%포인트 떨어지고 개인이 내는 보험료는 20% 가량 인하되는 셈이다. 더민주는 전체 건강보험 가입 가구(22756200가구) 87.9%(20009619가구)가 건보료 인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11.0%(2503008가구)는 지금보다 건보료가 오르고, 1.1%(243573가구)는 변동이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양승조 의원은 현재 부과체계는 직장과 지역가입자로 이원화돼 불공정 논란이 지속됐다. 공단에 제기된 누적 민원만 12600만건에 달한다실직이나 은퇴 등으로 소득이 줄었음에도 자동차를 보유하면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꼬집었다. 그는 모든 보험료 부과체계를 소득중심으로 단일화해 형평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국가 의료보장 강화…15세 이하 어린이의 입원진료비 국가가 책임져야

 

국민건강보험은 사회보장제도의 하나로서 국민 건강에 대한 사회공동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국민에게 필요한 기본적 의료를 적정 수준까지 보장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2013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의료비 중 국민건강보험 급여가 차지하는 비중은 62%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78%와 비교할 때 국가가 의료비 부담을 국민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해 국가의 의료보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미래의 사회구성원이 될 어린이와 청소년 건강이 우선적인 보호 대상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 7월 설훈 더민주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설 의원은 의료비 부담이 높은 입원진료부터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15세 이하의 어린이에 대해서는 입원진료에 대한 요양급여의 본인 일부 부담금을 면제하는 규정을 신설했다고 말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도 15세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국가 의료비 지원을 골자로 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약제비 등을 제외한 수술비, 입원비 등을 국가에서 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 24조에 따르면 아동이 최상의 건강 수준을 누릴 수 있도록 아동에게 적절한 보건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짓고 있다. 모든 아동은 사회보험을 포함,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을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이와 차이가 있다.

 

2014년 기준 0~15세 어린이가 지출한 입원진료비, 외래진료비, 약값 총액은 63937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중 60.7%는 건강보험에서 부담하지만 나머지 39.3%는 환자가 내야 하는 법정 본인부담금과 비급여 본인부담금이다. 국민건강보험은 17조원의 흑자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단 3%만 사용하면 15세 미만 모든 어린이의 입원진료비 본인부담금 전액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윤 의원의 설명이다.

 

중증질환이 많아 가계에 부담이 되는 어린이의 입원진료비를 국가가 부담토록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무교육을 받는 중학생 이하 어린이들이 과중한 병원비 부담으로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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