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중심 대출 벤처·창업기업으로 돌려야…부실기업 구조조정도 손 떼라"
"산업은행은 관치에 의해 대기업 위주로 지원하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도 관치로 실패했다. 박근혜 정부가 산은 민영화를 중단시켰다. 정책금융공사와 통합해 정책금융 기능을 살렸다. 이는 산은을 통해 대기업을 지원하려는 목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산은은 조선·해운업에 대규모 지원을 했고 구조조정은 실패로 나타났다."
산업은행을 오래 지켜본 금융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산업은행은 관치에 따른 대기업 위주 지원과 기업 구조조정 실패 문제를 안고 있다. 산업은행 수장들과 자회사간 경영 비리 문제도 있다. 자회사 관리를 위한 내부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다.
23일 전문가들은 산은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 관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대기업만 살리는 산은의 정책금융 기능·조직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산은의 기업 구조조정 역할을 축소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장은 정권과 관련이 깊다. 산업은행 회장은 금융위원장이 임명 제청하면 대통령이 임면(임명과 해임)한다. 현 이동걸 회장은 지난 대선 당시 금융인들의 박근혜 대통령 후보 지지 선언을 이끈 것으로 전해진다.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도 이명박 전 대통령 정권 실세였다. 2008년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했다. 2011년 산업은행장으로 부임했다.
이 구조는 산업은행장이 대기업 지원과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정부 요구를 거부하기 어렵게 만든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 발언을 보면 드러난다.
홍기택 전 회장은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4조2000억원 지원에 대해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금융당국 결정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10월 중순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등으로부터 정부의 결정 내용을 전달받았다"며 "당시 정부안에는 대우조선의 주채권은행인 산은과 최대주주 은행인 수출입은행이 얼마씩 돈을 부담해야 하는지도 다 정해져 있었다"고 말했다. 홍 전 회장은 "산은은 채권비율대로 지원하자고 했지만 그렇게 될 경우 수출입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이 크게 떨어질 것을 우려한 정부가 산업은행이 더 많은 지원을 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또 홍 전 회장은 2013년 4월 STX조선해양의 자율협약 지원 결정 당시 정부에 산은의 손실 보전을 요구했다. 감사원 감사에 대한 면책 보장도 요구했다. 그러나 대출 자체를 거절하진 못했다.
금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소장은 산업은행을 '사회적 자주 관리'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산업은행 감사와 이사 구성원 50%를 노조 대표, 학계, 시민단체, 민간 변호사 출신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산업은행 감사는 금융위원회가 임면한다. 신형철 산은 감사는 대통령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과 기획재정부 국장 경력이 있다.
금민 소장은 "한국 금융업은 낙하산 은행장과 관치가 팽배하다. 후진적이다. 국책은행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산업은행도 그렇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은행을 사회적 자주 관리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감사와 이사 구성원 절반을 노조 대표, 시민 단체, 금융 전문가, 변호사 등으로 뽑아 산은을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은 회장을 대통령이 임명하지 말라고 하긴 어렵다. 이 문제는 산업은행의 대기업 위주 지원 기능을 줄이면 해결할 수 있다"며 "산은의 대기업 위주 지원 기능은 현재 필요성이 적다. 이러한 산은 기능과 조직을 줄이면 대통령이 산은 회장을 임명해도 그 폐해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 "산은, 대기업 지원 기능 없애야…기업 구조조정 역할도 줄여야"
전문가들은 산업은행의 대기업 중심 대출 기능을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산은의 기업 구조조정 역할도 줄여야 한다고 했다. 산은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 정무위 소속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산은의 2015년 부실징후기업 대출 잔액 5조6365억원 가운데 대기업과 중견기업 대출이 94%(5조2919억원)를 차지했다.
국회 기재위 소속 박주현 국민의당 의원은 "산은과 수은은 대기업에 저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70년대식 정책금융 역할을 아직도 하고 있다. 지금 이 기능은 필요 없다"며 "산은의 중심 업무는 대기업에 저리 대출하고 그 기업이 망하면 인수해서 자회사로 운영하는 것이다. 산업은행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산은의 대기업 위주 저리 대출 결과가 대기업 유보금 800조원이다"며 "대기업은 시중은행이 아닌 국책은행서 저리 대출을 받아 영업익을 늘렸다. 기업은 부자가 됐지만 일자리는 만들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대기업 중심의 정책금융은 정부에 로비해서 저리 대출 받는게 최고라는 잘못된 신호도 준다. 산은에서 대출 받으면 망해도 산은이 인수해 준다. 한번 돈을 주면 정부가 계속 돈을 대준다"고 말했다.
윤석헌 전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산은은 대기업 지원을 지양해야 한다. 벤처, 창업 기업을 지원해 미래 산업을 살려야 한다"며 "이는 곧 관치의 영향을 줄이는 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산은의 기업 구조조정 역할을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윤석헌 전 교수는 "산은이 지금처럼 기업 구조조정에 주도적으로 나서면 민간 구조조정 시장이 자라나지 못한다. 산은의 기업 구조조정 역할을 줄여 민간 중심의 상시적 구조조정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산은이 구조조정 역할을 줄이면 자회사 관리 내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며 "다만 현재 산은이 관리하는 자회사들이 있으므로 산은의 권한과 책임을 높여 내부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장과 자회사 간 경영 비리도 문제다. 강만수,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들은 대우조선해양 비리와 관련해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 전성인 교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부실 기업 구조조정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밝혔다. "1997년 위환위기 후 산은이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개입하면서부터 산은 회장과 자회사간 비리가 생겼다. 산은에서 상무하느니 자회사가서 사장한다는 생각이 있는게 사실이다. 자회사 사장으로 얻는 이권도 있다. 그러나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산은의 원래 권한이 아니었다. 정부가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손을 떼게 하면 자연스럽게 산은 회장과 자회사 비리 문제도 없어진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통합도산법상 회생절차로 단일화하면 된다."
김성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부소장은 산은의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 지원 관행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원 중심의 기업 구조조정이 이뤄지도록 제도 개편을 요구했다.
"산은은 한번 대출한 기업을 계속 대출로 연명해 주고 있다. 이미 쓴 돈이 있기에 산은 회장과 정권이 자기 임기에만 기업 대출 문제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기 때문이다. 조선업 회생 가능성과 국가 경제에 대한 포괄적 고려 없이 대출을 계속해 연명시켰다. 법원 중심으로 구조조정 하는 제도적 방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