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들러리 역할만 하는 낙하산 인사 막아야"

산업은행이 '관치금융의 핵심'으로 질타받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자금 지원에 들러리 역할만 했다는 지적이다. / 사진=뉴스1

 

산업은행은 1954년 4월 만들어진 장기개발 은행이다. 산업과 국민경제 발전을 위한 산업자금의 공급·관리를 주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산은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우선 관치 문제다. 정부는 산업은행을 대기업 지원에 동원했다. 산업은행장들과 자회사 간 비리 혐의도 문제다. 강만수, 민유성 두 전 산업은행장은 자회사와의 비리 문제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자회사 관리를 위한 산은 내부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문제도 있다. 시사저널e는 산업은행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산은, 관치와 자회사 비리의 온상 △작동하지 않는 산은 자회사 관리 시스템 △산은의 구조적 개선 방안 등을 3회에 걸쳐 시리즈로 조명해 본다. <편집자주>

산업은행을 두고 '관치금융' 논란이 커지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자금 지원에 들러리 역할만 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기획재정부·금융당국 결정​으로 대우조선해양 유동성 지원이 확정될 때 애초부터 산업은행이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관치금융은 은행의 자율적인 판단 없이 정부가 일방적인 지시를 내려 특정 기업에 여신을 지원하는 등의 금융 풍토를 말한다. 과거 우리나라 금융권에는 정부가 나서서 기업을 키운다는 명목하에 은행에 대출 지시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은행은 피치못하게 정부의 지시에 따라 돈을 떼일 것이 분명한 부실기업에 돈을 빌려주면서 그 부실을 떠안아야 했다.

최근 산업은행 '관치금융' 논란도 마찬가지다. 산업은행 부실징후기업 대출액은 10년 사이에 무려 13배나 급증했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에 공개한 산업은행 '부실징후기업 대출 잔액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은행이 부실징후 기업에 대출해 준 잔액은 5조6365억원이다. 1년 사이에 3조6072억원이 늘었다. 2006년(4243억원)과 비교해 약 13배나 급격하게 증가했다.

민 의원은 "산업은행은 2015년에 대출 잔액 증가분 3조6072억원 중 1조9367억원을 STX조선해양에 지원했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또한 지난해 10월에 정부 당국과 수출입은행 등과 함께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 추가 지원안을 확정했다.

◇산업은행 관치금융 어떻게 작동했나

검찰은 2016년 초부터 대우조선해양 경영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5 회계연도 결산을 하며 자본잠식율 50%를 초과하자 영업손실 1200억원을 축소한 회계사기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최근 대우조선해양 최고재무책임자(CFO)인 김열중 부사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그동안 남상태, 고재호 전 사장을 구속기소하는 등 전 경영진 비리에 초점을 맞춰오던 검찰이 처음으로 현 경영진까지 수사를 확장했다.

검찰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은 자본잠식에 따른 관리종목 지정을 피하고 채권단으로부터 지원을 받기 위해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자료와 실무자들의 인정 등 증언을 모두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열렸던 청와대 서별관회의(비공개 거시경제정책협의체)에선 대우조선해양에 4조원대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금융관치 논란이 일어났다. 서별관회의는 청와대 본관 서쪽 별관에서 열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비공개 경제현안회의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이어져 온 경제부처 고위 당국자들의 비공식 모임이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회계사기와 관련해 "중대 범죄여서 엄한 처벌이 불가피한데도 아무런 외압이 없이 이런 일을 했다는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5년에 공시된 회계가 지난해 서별관회의 지원에 근거자료로 활용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검찰은 대우조선해양 전·현직 경영진의 회계조작 의혹을 조사하면서 최고 의사결정을 한 산업은행 수뇌부 조사도 벌이고 있다. 다만 검찰 관계자는 "서별관 회의는 2015년 10월, 회계사기는 올해 초에 있었던 일"이라며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금융권 관계자는 "천문학적인 자금 지원 결정을 했음에도 회사의 경영 여건이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결정 과정에 부당한 왜곡과 개입이 없었는지를 집중적으로 파헤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 "산은은 들러리였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은 지난 6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우조선해양 지원은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결정됐고 산업은행은 그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폭로했다.

홍 전 회장은 인터뷰에서 "당시 최경환 부총리,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진웅섭 금융감독원장 등으로부터 정부의 결정 내용을 전달받았다. 정부안에는 대우조선해양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최대주주 은행인 수출입은행이 얼마씩 돈을 부담해야 하는지도 다 정해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지원이 결정될 때 대우조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피기보다 밀실 행정과 관치금융으로 자금 지원을 결정했다는 주장이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도 지난 9일 지난해 대우조선해양과 산업은행이 삼정회계법인에 의뢰해 작성한 대우조선해양 실사보고서를 공개했다. 심 의원은 "서별관회의 참석자들이 대우조선해양의 3조1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 사실을 알고도 공적 자금 투입을 결정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은 회계연도 기준으로 2012년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미청구공사, 추가청구공사 대금, 하자보수 충당 부채 등 실행 예산 및 도급 금액에 따른 조정을 통해 약 1조6000억원, 투자 실패·채권 부실 등 다른 20개 항목을 통해 약 1조5000억원의 추가 손실을 숨기고 있었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공적 자금 투입을 결정했던 지난해 10월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서 이 보고서가 기초 자료로 활용됐다는 게 심 의원 주장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청와대 서별관회의 참석자들이 대우조선해양의 3조1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 사실을 알고도 4조원이 넘는 공적 자금 투입을 결정했다.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에서 작년 하반기 이후 최대 3조 원의 추가 손실이 우려된다는 점은 이미 당시 실사 결과와 함께 발표했던 내용이고 숨긴 적도 없다"며 "추가 손실을 분식회계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산업은행이 결과 3조원 넘게 추가 손실이 있을 수 있다는 결과를 보고도 대우조선해양에 공적자금 투입을 결정한 것은 상식적인 결정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국책은행에 전문성없는 낙하산인사 논란

산업은행장은 금융위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전무이사와 이사는 회장의 제청으로 금융위원회가 임명한다. 감사 임명도 금융위원회가 담당한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일 외부 인사가 국책은행의 임원으로 임명되는 것을 지적하며 이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국책은행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박용진 의원은 "대우조선해양 사태의 원인 중 하나인 관치금융의 폐해를 막고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책은행의 임원 자격요건에 전문성이나 경력요건을 추가해야 한다"면서 "국책은행에 전문성없는 낙하산인사가 내려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산업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이자 주채권은행임에도 불구하고 경영진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며 "국책은행에는 아직도 군대식 서열문화가 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라는 문화다. 산업은행 책임론 보다 관치금융을 이어가는 정부 책임론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모든 게 투명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며 "채권단에 전적으로 맡기지 않고 당국이 좌지우지하는 방식으로 가다보니 국책은행이 문제를 인식해도 정부 안대로 돈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능력없는 낙하산 인사가 국책은행에 들어오는 걸 해결하지 못하면 현 상황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강만수·민유성 등 전직 산업은행장의 경영비리 수사에 나서고 있다. 검찰은 먼저 강 전 행장이 대우조선해양에 압력을 넣어 지인 등이 운영하는 회사에 부당 투자하거나, 부당 일감을 몰아줬다고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마찬가지로 민유성 전 행장에 대한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민 전 행장이 대우조선해양 홍보대행업체인 N사 박모 대표를 통해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으로부터 연임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을 들여다 보고 있다.

홍기택 전 은행장 역시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검찰 수사 방향에 따라 홍 전 회장이 폭로한 서별관회의로 수사 확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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