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화를 위한 플랫폼 확장력 장점…중국 원작 판권 구입해 역수출 노리기도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 공히 영상화할 수 있는 콘텐츠 찾기에 혈안이 된 모양새다. 지난해 5월 부산 해운대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콘텐츠마켓(BCM) 2015' 모습. / 사진=뉴스1

 

국내 콘텐츠업계를 이끄는 방송사들이 웹 소설로 경쟁하고 있다.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 공히 영상화할 수 있는 웹 소설 찾기에 혈안이 된 모양새다. 웹 소설의 플랫폼 확장력 때문이라는 전문가 분석이 나온다. 이미 중국 콘텐츠업계는 웹 소설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며 새 수익모델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도 있다.

KBS가 2TV를 통해 22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구르미 그린 달빛’은 동명의 인기 네이버 웹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다. 방영 첫 회 후 반응은 기대보다 좋다. 시청률 19.5%를 넘어선 SBS ‘닥터스’와 동시간대 방영임에도 첫 회 시청률(8.3%)이 선전했다. 온라인 반응도 좋은 편이다.

오는 29일부터 SBS에서 방영 예정인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이하 보보경심)는 중국의 동명 웹 소설이 원작이다. 국내 제작사가 웹 소설 영상화 판권을 구입해 사전제작했다. 국내에서 중국 웹 소설을 재해석해 드라마로 만든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준기와 아이유가 주연을 맡으면서 화제성도 갖췄다.

이제는 지상파의 라이벌이라 부르는 게 더 익숙한 CJ E&M은 아예 웹 소설 서비스업체인 펀치라인과 지난 19일 전략적 제휴협약을 체결했다. 두 회사는 첫 사업으로 웹 소설 공모전을 실시하기로 했다. 드라마, 영화 등 영상화를 위한 원작 콘텐츠를 찾기 위해서다. 펀치라인의 신규 연재작에 CJ E&M이 제작비를 투자하고, 영상화 지원을 할 계획이다.

방송사들이 웹 소설에 관심을 갖는 것이 오히려 늦었다는 지적도 있다. 웹 소설 시장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올해 1월 웹 소설 서비스 출시 3주년을 맞아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웹 소설에 정식 연재된 작품의 누적 조회 수는 약 18억건으로 나타났다. 작품 당 1497만건 수준이다.

이러다보니 유명 작품의 매출도 크게 늘었다. 노승아 작가의 ‘허니허니웨딩’은 ‘미리보기’ 매출로만 월 1억 원 이상을 거둬들였다. ‘구르미 그린 달빛’​처럼 웹 소설이 종이책이나 영화, 드라마로 다시 제작되는 사례도 늘었다. 

 

영상 콘텐츠 시장에서 불고 있는 웹 소설 바람은 웹툰의 인기와도 결이 다르다. 장민지 한국콘텐츠진흥원 박사는 웹툰은 애초에 이미지로 구성돼 있어서 다시 영상화하는 데 다소 제약이 있다​며 일정수준 이상의 기술과 자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웹 소설은 진입장벽이 낮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라며 다방면으로 IP(지적재산권) 확장도 가능하다. 종이 소설보다 호흡도 짧아 영상화하기에도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대표적 방송사가 최근에 와서야 웹 소설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지만 이미 중국은 이런 추세를 대중화시킨 모습이다. 지난해 중국 박스오피스 매출 24억 위안(한화 약 4032억원)을 거둬들인 착요기는 웹 소설이 원작이다. HBO가 리메이크해 더 유명해진 후궁견환전의 원작도 웹 소설이다. 누적조회수 274900만건을 넘은 도묘필기102000만건을 기록한 무심법사도 웹 소설을 드라마화한 작품이다. OTT업체 르티비(Letv)가 자체 제작해 큰 인기를 끈 태자비승직기도 동명의 웹 소설을 각색했다.

 

중국 웹 콘텐츠 시장 성장세의 토대는 젊은세대다. 1990년대에 태어난 주링허우(九零後) 세대’가 콘텐츠 소비변화를 이끄는 한복판에 서 있다. 이들 덕에 지난해 기준으로 중국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이용자수는 5억명을 넘어섰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 에이전트는 방송사 콘텐츠 유통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중국에서 성공한 대부분의 IP들은 웹 소설에 기반을 뒀다이제는 중국 뿐 아니라 국내 시장 IP까지 눈독 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신은호 CJ E&M 중국법인 대표도 지난 3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2~3년간 중국에서는 인기소설 및 인터넷 소설, 웹툰 등의 원작과 작가를 확보하기 위해 알리바바, 텐센트 등 대형 온라인 플랫폼을 비롯하여 영화/드라마 제작사들 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라며 “CJ E&M은 국내 웹툰, 영화, 드라마, 소설 중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장르, 스토리의 아이템들을 선정해 현지화 시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웹 소설 기반 영상시장에서 염두에 두는 노림수는 복합적이다. 이들의 움직임 뒤에는 여러 플랫폼을 연동시키는 치밀한 콘텐츠 수익 전략이 담겨 있다. 중국 업체들이 웹과 오프라인 플랫폼을 다각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장민지 한국콘텐츠진흥원 박사는 아이치이나 텐센트는 그동안 영상 플랫폼으로만 알려져 왔지만 웹 소설 플랫폼도 운영하며 영상화 작업에 박차를 가해왔다. 특히 웹 소설을 웹 드라마로 만들어 유료화하는 방식으로 이윤을 얻고 여기서 얻은 수익으로 다시 영화에 투자하는 형태의 플랫폼 연동 모델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웹 소설에 주로 바탕을 둔 웹 드라마의 성장은 웹과 TV 사이의 교류모델도 만들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6 글로벌 마켓 심층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웹 드라마의 제작규모가 커지고 아이치이, 요우쿠 등이 기금도 조성하면서 퀄리티가 향상됐다. 이에 따라 위성방송으로 진출하거나 온라인-TV 동시방영이 이뤄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국내 업계도 중국의 성공모델을 주시하는 모양새다. 보보경심의 SBS 방영이 단적인 사례다. 웹 소설 보보경심은 2011년 중국에서 드라마로 방영돼 큰 인기를 끌며 중국업체들의 웹 소설 발굴 경쟁의 단초가 됐다

 

업계 관계자는 보보경심이 히트하면 중국의 IP가 한국에서 리메이크돼 역수출 되는 새 모델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흥미롭게도 보보경심구르미 그린 달빛과 동시간대에 방영된다. 국내 웹 소설과 중국 웹 소설이 KBSSBS의 전파를 통해 정면승부를 펼치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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