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가입 취약계층에 과도한 부담 안겨…"소득 단일 부과체계로 바꿔야"
2014년 소득이 거의 없어 생활고로 자살한 송파 세모녀가 매달 건강보험료로 5만원을 납부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정부는 현행 건강보험 부과체계를 대폭 개편하겠다고 밝혔지만 2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지난해 1월 정부의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이 건강보험 부과체계를 대폭 바꿀 것이란 기대가 형성됐지만 연말정산 파동 이후 건보료 개편 논의는 백지화됐다. 정부가 국민 건강과 직결된 건강보험을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현행 건강보험 부과체계는 실직자나 차상위계층 등 취약계층에게 지나치게 부담을 지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송파 세모녀 사건은 이런 건강보험 부과체계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다. 20대 여성, 가구원 수 등 몇몇 요인 탓에 경제적 능력이 과잉 추정됐기 때문이다.
실직과 동시에 건강보험료 폭탄을 맞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 임대소득 등 기타 소득은 없고 근로소득만 있는 상태에서 집과 자동차가 소득으로 잡히면서 보험료가 급증하는 것이다. 현행 건강보험 부과체계에선 직장가입자의 경우 보험료를 성별, 나이, 자동차, 주택가격 등에 따라 점수를 매겨 차등적으로 부과한다. 이에 따라 실직과 동시에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가 되면 보험료가 많게는 세배까지 늘어나는 사람이 생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부과방식이 사회보장취지에 맞지도 않고, 이중부담을 지우고 있다고 말한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팀장은 “임야를 소유한 경우 재산소득이 발생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토지를 소유했다는 것을 경제적 능력으로 간주하고 건보료를 매긴다. 또한 거주하는 전월세 주택에도 건보료를 매긴다. 경제적 능력으로 볼 수 없는 기준을 평가소득에 산입해 건보료를 납부하게 돼 있어 애매하다”며 “재산에서 소득이 발생할 때, 재산이 아닌 소득 자체를 기준으로 건보료를 매기는 것이 사회보장취지에도 맞다”고 말했다. 또한, “실직후에 보험료부담이 더 커지는 부과체계는 반드시 개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지역가입자의 건보료 산정시 불합리성이 두드러진다. 근로소득자는 건보료를 임금에만 부과한다. 반면, 지역가입자는 근로 소득뿐만 아니라 재산에도 부과한다. 따라서 소득중심 건보료 부과시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 간 형평성 제고에도 도움이 된다.
물론, 지역가입자가 고소득자인데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탈세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은 대부분 직장가입자로 포함돼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말한다. 건보통합 당시 지역가입자에는 고소득 전문직과 자영자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근로자 1인 이상 사업장이 직장가입자로 전환된 결과 지역가입자는 대부분 은퇴자와 영세 1인 자영자, 일용 근로자 등 저소득층으로 이뤄져 있다.
이찬진 변호사(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 는 “이제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는 근로, 소득유형에 의한 구분은 무의미하고 소득탈루 논쟁 역시 의미를 찾기 어렵다. 자영업자 소득파악률이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와 현금영수증 제도 시행으로 70%를 넘어섰다. 그나마도 대부분이 직장가입자로 전환된 상태”라고 말했다.
현행 보험료율(6.12%)을 유지한 채 소득중심으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바꾸면 적자가 날 것으로 추계된다. 하지만 건강보험 누적 재정흑자가 17조원인데다 건강보험은 매해 걷어 매해 지출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다. 건강보험료율은 매해 다시 정한다. 다음해 건강보험 지출규모에 맞게 건강보험료율을 조정하면 된다.
남 팀장은 “재산을 일시에 줄이다 보면 많은 적자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줄이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건강보험의 보장률이 높아지면 국민들이 그에 따라 보험료율을 더 올려줄 수도 있고 더 낮출 수도 있다. 현재는 재정흑자가 오히려 과도하다. 정부가 남는 건강보험 재정을 펀드 등에 투자한다고 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야당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 TF를 꾸려 보험료 부담과 재정적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법안을 준비중이다. 전문가들은 건보료 체계 개편으로 인해 당장 적자가 발생하더라도 누적된 적립금으로 충당하고 향후 전체 보험재정의 흐름을 보면서 보험료율을 조정해나가자고 말한다. 건강보험료를 소득이 발생하지도 않는 주택이나 토지, 자동차 등을 기준으로 제정하는 현 방식에서 소득만을 기준으로 부과하는 방식으로 개선하자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