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기업 아성에 편의점‧마트 뛰어들어 무한경쟁…1인 가구 증가·경제패러다임 변화가 낳은 현상
간편식 전쟁이 유통업계 경계마저 허물어뜨렸다. 식품기업 매출1위 CJ제일제당이 치고나가자 동원이 추격하고, 그 옆에서 편의점과 대형마트도 함께 달리는 모양새다. 1인가구 증가가 이 같은 현상을 불러왔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저성장‧저소비 등 경제패러다임 변화가 만들어낸 근본적인 사회변동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1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7월 말부터 최근까지 간편식 신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폭염 탓에 아무래도 음식을 해먹는 게 더 어려워 지다보니 업체도 이 시기를 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간편식 중심으로 식품판매대가 짜인 편의점은 폭염기간에 평소보다 성황을 이뤘다. 15일 신한카드가 폭염이 절정에 달했던 이달 4일과 5일, 7일, 8일의 소비행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편의점 이용회원과 건수, 취급액은 각각 10.6%, 12.9%, 11.8% 늘었다. 반면 백화점은 2.7%, 4%, 7.9%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전체 식품산업 중 간편식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도 증가하는 추세다. 농림축산식품부가 12일 발표한 ‘2016년도 식품산업 주요지표’에 따르면 간편식 관련품목 출하액은 2004년 1조 2000억원에서 2014년 3조 5000억원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추세에 따르면 올해는 4조원 규모를 넘어섰을 가능성이 높다. 냉동조리식품과 레토르트 식품은 각각 1조 1000억원과 7300억원 규모로 커졌다.
기업들은 공세적으로 제품 확대에 나섰다. 연간 매출액 4조원으로 국내 식품기업 중 가장 규모가 큰 CJ제일제당은 6월 냉장 컵반 2종 출시에 이어 16일 콩나물국밥 출시까지 총 15종의 햇반 컵반을 잇달아 내놓으며 간편식 제품 라인업을 확대했다. 간편식 수요가 늘어나는 막바지 휴가시즌에 맞춰 판매확대에 집중하겠다는 복안이다.
동원그룹은 각 계열사가 간편식 시장에 모두 나섰다. 동원홈푸드는 가정간편식(HMR) 전문 온라인몰을 통해 라인업 확대에 나섰다. 온라인몰 ‘차림’은 이달 8일 일반 식사보다 나트륨 함량을 20% 낮춘 건강 간편식 ‘솔트컷’을 출시했다. 솔트컷은 강남세브란스병원과 함께 개발한 제품이다.
동원홈푸드 관계자는 “동원홈푸드는 최근 ‘차림’ 오픈을 비롯해 국내 최대의 HMR 전문 온라인몰인 ‘더반찬’을 인수하는 등 HMR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메뉴 개발과 제조공장, 물류시스템의 확장 등 지속 투자에 나설 계획”이라고 전했다.
연간매출액이 1조 3000억원 규모인 동원 F&B도 지난달 냉동밥 시장에도 진출했다. 냉동밥 시장은 최근 50%의 성장률을 보이며 400억원대로 커졌다. 동원산업도 이달 ‘동원간편구이’ 브랜드 제품을 처음 내놨다. 전자레인지에 1분만 데우면 바로 섭취가 가능한 고등어 3종이다.
하림과 이마트는 손을 잡고 찜닭 간편식을 내놨다. 지난달 28일 나온 ‘안동식 찜닭’은 간편 조리가 가능하도록 개발한 양념소스와 당면이 동봉돼있어 구입 후 그대로 냄비에 넣고 익히면 된다. 다음날 이마트는 자체 식음료 브랜드 ‘피코크’를 통해 간장게장‧양념게장 간편식도 내놨다.
편의점은 간편식 시장의 명실상부한 총아다. GS25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간편식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4.6% 증가했다. 상반기 중 육개장, 미역국, 순두부찌개, 삼계탕, 김치찌개 등 가열해서 즐기는 가정간편식도 매출이 77.9% 늘었다.
간편식의 무한성장은 1인가구 증가 덕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경제패러다임 변화가 만들어낸 보다 사회변동에서 성장동인을 찾는 시각도 있다.
먹거리 담론과 음식문화 현상으로 박사논문을 쓴 강보라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은 “간편식 시장의 성장은 전통적인 ‘식’에 대한 가치변화와 맞물려 있다. 특히 저성장‧저소비의 지속과 맞벌이부부 증가를 눈여겨봐야 한다”며 “음식준비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행위가 후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식품기업도 ‘시간’의 문제를 정면으로 공략하는 모습이다. 16일 ‘콩나물 국밥’을 출시한 CJ제일제당은 “바쁜 아침 시간에 편의점이나 분식점을 찾기도 부담스러운 1~2인가구 직장인 소비자 생활패턴을 고려할 때 좋은 반응이 기대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 이 제품의 전자레인지 조리 시간은 최대 4분에 불과하다.
지난달 즉석조리용기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 영국 기업 ‘i2r Packaging Solution’의 용기를 업계 최초로 도입한 GS25도 “별도의 냄비가 필요 없이 포장 용기 그대로 가스레인지 조리가 가능해 간편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을 눈에 띄게 강조했다.
이 같은 최근의 현상에 대해 강보라 연구원은 “과거의 ‘식’이 시간을 오래 들여 간직하려는 가치를 담고 있었다면 이제는 그 시간의 틈새를 다른 행위들이 차지하게 됐다. 차라리 그 시간에 모바일 메신저로 누군가와 끊임없이 소통하거나 콘텐츠 소비에 집중하는 거다. 피씨방에서 컵라면 먹으며 게임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며 “누군가에게 뽐낼 필요가 없이 ‘간편한 한 끼’를 책임져주는 간편식이 성장할 환경이 계속 만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