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여파 6월말 대기업 대출 연체율 2.17%로 사상최고…"기업당 대출규모 커 하나만 잘못돼도 치명타"

STX조선의 법정관리 신청 등 대기업 대출 연체율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국내 은행들이 대출 부실화에 대비해 대기업 대출을 줄이고 있다. / 사진=뉴스1

 

국내 은행들이 대기업 돈줄 죄기에 나섰다. 해운·조선업 등 취약업종 대출 부실 현실화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이에 시중은행은 대손충당금적립율을 높이고 대기업 대출심사를 강화했다. 최근 대기업 연체율이 크게 상승한 것도 은행의 대기업 대출 기피에 영향을 끼쳤다.

지난 1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7월 중 금융시장 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업대출은 748조9000억원이다. 전월보다 6조1000억원 늘었다.

대기업대출 증가폭은 지난달보다 5000억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대기업대출은 전월(-2조9000억원)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돌아섰다. 5월에도 대기업 대출은 3700억원 감소한 바 있다. 두 달 연속 감소세였다. 특히 올해 3월에는 대기업 대출이 2조5000억원 급감한 바 있다.

대신 시중은행은 중소기업 대출을 늘렸다. 7월 중소기업 대출은 5조5000억원으로 지난달(1조7000억원)보다 223.5%나 급증했다. 시중은행이 대기업 대출을 피하고 개인사업자, 중소기업 대출 규모를 늘리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에는 대기업 대출 연체율이 치솟으면서 시중은행의 대기업 대출 기피현상을 부추겼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월말 국내은행 대기업 대출 연체율은 2.17%로 집계됐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던 2008년 관련 통계 발표 이후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6월 대기업 대출 연체율은 전월보다 0.81%포인트 올랐다. 지난해 같은 기간(0.68%)과 2014년 6월(0.71%)와 비교해도 3배 가량 오른 수치다.

이재용 금감원 특수은행국 부국장은 "대기업 연체율이 급증한 건 기업 구조조정으로 부실기업 연체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며 "STX조선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신규 연체가 발생한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금융업계는 이번 연체율 급상승을 STX조선 법정관리 신청이라는 일회성으로만 보지 않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STX조선 법정관리 신청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한진해운과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과 해운업종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며 "연체율 추가 상승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대기업 대출은 기업당 대출규모가 커서 한 기업만 무너지더라도 은행에 미치는 파장이 크다"며 "올해 상반기 농협은행이 홀로 적자 실적을 발표한 것은 해운·조선업에 대한 충당금을 쌓은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시중은행들은 또한 기업 구조조정에 대비해 충당금 적립 등 선제적 대응을 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시중은행은 충당금적립율을 일제히 상향했다. 선제적인 충당금 적립을 위해서다.

상반기 신한은행 대손충당금적립비율은 175%를 기록했다. 업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KB국민은행 대손충당금적립비율은 168.1%다. 지난해 말보다 16.5%포인트나 올랐다.

우리은행 대손충당금적립비율은 140%로 지난해 말보다 18.5% 올랐다. KEB하나은행의 대손충당금적립비율은 123%로 지난해 말보다 소폭 줄었다.

농협은행 대손충당금적립비율은 93.88%로 지난해 말보다 14.23%포인트 올랐다. 올해 상반기에 전년 동기보다 약 2배 많은 충당금을 적립했다. 농협은행은 조선·해운업 불황으로 인한 충당금 적립으로 3290억원 적자를 봤다.

시중은행은 대기업 대출 심사도 깐깐하게 이뤄지고 있다. 대기업 대출 축소와 대손충당금 적립 등을 통해 대기업 대출 부실화에 대비하면서 기업 옥석 가리기에도 신경 쓰겠다는 의미다.

한은이 발표한 '금융기간 대출행태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국내은행의 대기업 대출태도지수는 -19로 집계됐다. 지난 분기보다 3포인트 떨어졌다. 지난 2008년 4분기(-38) 이후 최저치다.

대출태도지수가 마이너스가 되면 대출 심사 때 은행이 금리나 기간 등의 조건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등 대출심사를 강화했다는 의미다.

은행 관계자는 "조선과 해운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구조조정이 본격화됐다. 또 저금리, 저성장 등 국내외 경기 불확실성이 지속하고 있다"며 "이에 따른 대기업 신용위험 증가에 대응해 대출심사를 강화한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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