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노조와 갈등 최고조…시위 버스 막고 노조 간부와 말다툼도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9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국세청 앞에서 ‘대한항공 경영정상화를 위한 세무조사 촉구대회’를 열었다. / 사진=임슬아 기자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KPU)가 국세청 앞에서 자사 세무조사를 청원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대한항공 경영진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서화석 대한항공 운항본부장은 시위 현장에서 시위 참가자들을 지켜보는 모습이 취재진 눈에 띄기도 했다. 서 본부장은 또 국세청으로 향하는 노조 버스를 막아서면서 노조 간부들과 언쟁을 벌이며 대치하기도 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9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국세청 앞에서 ‘대한항공 경영정상화를 위한 세무조사 촉구대회’를 열었다. 자리에는 김대규 수석 부위원장을 비롯, 조합원 100여명이 비행정복 차림으로 참석했다.

당초 조종사노조는 오후 1시 30분 국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별도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사측이 노조에 “기자회견을 강행할 시 노조 수뇌부에 파면 등 중징계를 내리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회견이 취소됐다.

조종사노조가 국세청 앞에 모인 시각은 집결 예정 시간보다 40분 이상 늦어진 오후 2시 10분. 노조에 따르면 서화석 대한항공 운항본부장이 김포공항에서 국세청으로 향하는 조종사노조 버스를 막아서며 거리 시위가 지연됐다. 한 노조원은 “서 본부장과 간부들이 막무가내로 버스 출발을 지연시켰다”며 “이 과정에서 노조 간부들과 심한 말다툼이 있었다”고 밝혔다.

노조는 이날 시위에서 ▲세무조사 및 징벌적 과세 실시 ▲진경준 검사장과 대한항공 오너 일가 관계 철저 조사 ▲조종사 훈련교육비 내역 공개 ▲계열사 탈세 의혹 수사 촉구 ▲부채비율 증가 원인 검증 등을 요구했다. 

9일 오후 2시 30분경 서울지방국세청 앞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시위현장 맞은 편 도로에 서화석 운항본부장이 등장했다. 기자가 본부장에게 다가가 현장에 온 경위를 묻자, 본부장은 답변을 거부했다. / 사진=임슬아 기자

 


조종사노조가 ‘부실경영 책임전가, 조종사는 분노한다’는 구호를 제창하던 오후 2시 30분쯤 시위현장 맞은 편 도로에 서화석 운항본부장이 등장했다. 서 본부장은 뒷짐을 진 채, 시위에 참여한 조종사들을 바라보며 옆에 선 간부들과 대화를 나눴다.

기자가 본부장에게 다가가 현장에 온 경위를 묻자, 본부장은 인터뷰를 거부하고 황급히 간부들 뒤로 몸을 숨겼다. 현장에 있던 대한항공 간부는 “서 본부장이 개인적으로 왔을 뿐이니 더 이상 묻지 말라”고 기자를 막아섰다. 서 본부장은 그 뒤로도 시위 현장 앞을 떠나지 않고 시위 모습을 지켜봤다. 

조종사노조 관계자는 “노조에게 시위를 강행하면 징계를 내리겠다고 협박까지 한 상황에서 운항본부장이 현장에서 지켜보니 불안했다”며 “시위 참가 조종사들이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신원을 숨기려한 이유가 무엇때문이겠나”라고 말했다.

서 본부장과 조종사노조의 갈등은 지난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1월 28일 대한항공은 ‘운항승무원과 가족 분들께 드리는 글’이라는 편지를 한국인 기장, 부기장 등 2500여명의 집으로 보냈다. 서화석 대한항공 운항본부장 명의로 보낸 편지에는 “회사가 매우 어려우니 조종사 노조가 요구하는 급여 37%, 퇴직금 50% 인상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조종사노조는 “급여와 근로조건을 국제기준 이상으로 맞춰주려고 노력한 흔적은 찾을 수 없다”며 “운항본부 수장의 명의로 가족에게 우편물을 보낸 행위는 직위를 이용해 가족을 위협하는 시도”라고 반발했다.

노조는 5월 26일 운항본부장이 정당한 노조의 쟁의행위에 개입했다며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고용노동부에 우편으로 고소장을 발송했다. 조종사노조 측은 운항본부장 행위가 노동조합 및노동관계조정법 81조에서 규정한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대한항공은 지난해 8월17일 황철 전 운항본부장 후임으로 운항본부 내 운항승무부 담당 임원이었던 서화석 전무를 신임 본부장으로 선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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