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취업 수월해 대출 리스크 적다" 선호…무절제한 사용으로 신용불량자 양산 우려

 

서울 한 병원 로비에 의료진이 지나가고 있다. / 사진=뉴스1
서울 한 의학전문대학원 4학년에 재학중인 A씨는 며칠 전 학교 주변 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다. A씨는 상담을 받은 지 십여 분만에 3000만원 한도 통장을 쥘 수 있었다. 직원이 요구한 서류는 신분증과 재학증명서뿐이었다. 제 2금융권에서 수백만원 대출 이력이 있었지만 직원은 "대출금을 갚았다면 신용도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며 통장을 개설해줬다.

A씨를 비롯한 의전원 동기들은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한 지 오래다. 3%후반~4%초반 금리로 대출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A씨는 “학생이긴 하지만 연령대가 높다보니 부모님께 손 벌릴 수 없어 몰래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은행 직원은 “향후 우량고객 확보 차원에서 낮은 금리로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준다”며 “내규상 의전원생은 의대생과 달리 학사를 마치고 진학하기 때문에 연령대가 높아 부모님 동의서가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대생에게도 부모님 동의서를 요구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소득이 없더라도 성인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님 동의를 받으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며 “의대·의전원을 졸업하면 대부분 수월하게 취업을 하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적어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직 소득이 없는 이들에게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신용불량자를 양산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의대 재학 시절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던 전문의 강성윤(34)씨는 "마이너스 통장을 열어 식비, 유흥비로 사용한 게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갑자기 용돈이 늘었다고 생각해 친구 해외 여행비까지 마이너스 통장에서 인출해 사용했다"며 “레지던트 3년차 때 겨우 빚을 갚았다”고 했다.

의대생에게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주지 않는 한 은행 관계자는 "의대생에게도 론 상품을 판매했지만 생각보다 연체율이 많았다"며 "어느 정도 이상 수준으로 소득이 있을 줄 알았는데 원금과 이자를 제때 못 갚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장은 “은행 나름대로 채권 확보 방법, 신용평가 노하우가 있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의대생에게도 대출을 해주지만 경쟁적으로 영업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 소득이나 거래 실적이 거의 없는 학생들이 어릴 적부터 쉽게 돈을 사용한 뒤 개원, 집 장만을 이유로 계속해서 은행 빚에 허덕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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