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부터 수백개 자회사 자리까지 보은 인사 판쳐…중립적·객관적 업무수행 처음부터 곤란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비리의 중심에 섰다. 강만수 전 산업은행 행장이 분식회계에 연루된 정황으로 검찰의 압수 수색을 받았다. 강만수 전 행장 전임인 민유성 전 행장 역시 대우조선해양 분식 회계 관련 수사 선상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올해 2월 산업은행 회장직을 내려놓은 홍기택 전 회장도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시기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 검찰의 수사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산업은행은 개인 비리라며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하지만 금융 전문가들은 낙하산 인사와 주인 없는 기업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며 산업은행의 구조적인 문제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 산업은행 전 행장들 나란히 비리 연루 ‘의혹’
사정당국의 칼 끝이 산업은행으로 향하고 있다. 남상태, 고재호 두 전직 대우조선해양 사장의 경영 비리를 수사 중이던 검찰은 2일 강 전 행장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두 전직 사장의 개인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하고 강 전 행장에 대한 수사를 결정한 것이다.
앞선 검찰은 대우조선해양이 수 조원대의 적자를 냈음에도 분식회계를 통해 이를 숨긴 두 두 전직 사장을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강 전 회장이 두 전직 사장의 경영 비리를 묵인해주는 대가로 금품을 받거나 지인이 운영하는 일부 업체에 일감을 몰아주는 등의 특혜를 줬다는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이날 강 전 행장을 통해 대우조선과 특혜성 거래를 맺은 것으로 의심되는 중소건설사 W사의 대구 수성구 사무실과 바이오업체 B사의 전남 고흥군 사무실, 강 전 행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투자자문사 P사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검찰의 수사는 민유성 전 행장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높게 점쳐진다. 민 전 행장은 2008~2011년 산업은행 행장을 지냈다. 민 행장은 남 전 사장의 연임 과정에 개입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이미 민 전 행장은 성진지오텍 관련 100억원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한 상태다. 홍기택 전 회장 역시 재임 기간(2013~2016년) 일부가 고재호 전 사장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 분식회계에 대한 면밀한 감시가 이뤄졌는지에 대해 수사할 여지가 크다.
◇ 주인없는 기업에 떨어진 낙하산 인사
산업은행 행장들의 비리 연루 의혹이 짙어진 가운데 산업은행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개인적인 비리라 하기에는 행장 3명이 연달아 비리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탓이다. 대우조선에 수 년간 부행장급을 최고재무책임자(CFO)로 내려보내고도 회계 부실 등을 눈치채지 못한 것도 시스템의 문제로 여겨진다.
특히 낙하산 인사 관행이 비리의 핵심 원인이 되고 있다. 보은성 인사 탓에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권력 측근들이 국민 혈세를 투입해야 하는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강만수 회장은 대통령 경제특별보좌관을 지낸 직후 산은금융지주회장에 선임됐다. 박근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한 홍기택 회장은 취임할 때 스스로 ‘낙하산이기 때문에 부채가 없고 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며 낙하산 인사임을 자처했을 정도다.
낙하산 인사로 수장이 되다보니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홍 전 회장은 지난 6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기획재정부·금융당국이 결정한 행위로, 애초부터 시장 원리가 끼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으며 산업은행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말했다. 이는 보은 인사로 요직에 앉게 되면 전문성이 있더라도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기가 어렵다는 반증이 된다.
낙하산은 비단 행장 자리에만 그치지 않는다. 산업은행 퇴직자들이 이익관계가 있는 회사에 재취업하는 관행도 뿌리 뽑히지 않고 있다. 민병두 의원(국회 정무위원회)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가 진행됐던 2011년 8월부터 2014년까지 산업은행 출신으로 재취업한 퇴직자 47명 중 31명이 주거래 기업의 대표이사 등 고위직으로 옮겨갔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 출신들이 채권을 회수하지 못해 출자 전환한 회사를 감시하는 자리까지 차지하고 있다”며 “주인없는 회사를 엄격하게 관리해야 할 이들이 대출 봐주기 등 비리의 창구가 되고 있다. 5억원 이상 대출해준 기업에 대해 재무를 분석하게끔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데 대우조선해양에 이 시스템이 적용 되지 않은 것도 이 탓”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산업은행이 제 갈 길을 가기 위해선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김남근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은 “국민의 혈세를 쓰는 산업은행이 똑바로 서기 위해서는 수 백개에 이르는 부실 자회사를 감시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지금과 같은 인사보단 회계, 재무 전문 인력풀 등을 통해 전문적인 체계를 갖춰야 책임있는 관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