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자살보험금 판결 대비…소멸시효 종료때까지 보험금 지급 고의로 미룬 정황도 드러나

금융소비자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단체가 6월 1일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생명 본사 앞에서 자살보험료 지급을 미루고 있는 생명보험사 규탄 및 보험금 지급을 촉구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생명보험사들이 소멸시효 기간까지 의도적으로 자살보험금 지급을 미뤄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한 생보사는 전직 대법관 출신까지 영입해 소멸시효 관련 대법원 판결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금융감독원이 본 자살보험금 최대 관건은 '고의성' 여부다. 금감원은 자살보험금 지급을 미뤄온 생보사가 의도적으로 자살보험금 규모를 축소하고 지연이자를 누락한 정황을 입증하면 최고경영자까지 문책하겠다는 입장이다.

생보사 보험금 심사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회사 심사 기준에 따라 지급을 미뤘다. 고객의 자살보험금 청구가 있었음에도 지급을 보류한 것"이라며 "결국 고객들에게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 나중에 주겠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이는 애초에 생보사가 약관에 따라 지급했어야 할 보험금을 수익자가 따로 청구하지 않아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주장과 배치된다. 또 고객이 자살보험금 청구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보험금을 청구했지만 생보사가 일반사망금만 줬다는 주장과 일치한다.

그는 이어 "이미 고객들은 자살보험금을 청구했기 때문에 청구가 없었다고 볼 수 없다. 이 케이스는 소멸시효를 문제 삼지 않는 게 관행"이라며 "회사 심사 방향이 일반사망보험금을 주고 재해사망보험금 지급 보류라고 한 상황이었다. 보류가 길어지면서 소멸시효가 지났다. 하지만 청구가 있었다면 소멸시효를 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현재 금감원은 6월 27일부터 삼성생명과 교보생명에 대해 자살보험금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현장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금감원은 특약만 아니라 주계약에서 보장한 자살보험금 규모와 지연이자 계산의 적정성 등도 검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생보사들은 대법원이 지난 5월 자살에 대해 재해사망 특별약관에 따른 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한 후 자살보험금 지급보류를 풀고 일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교보·한화생명 등 일부 보험사에서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소멸소효가 지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관계자는 "생보사가 이번 대법원 판결을 자신하는 이유가 있다. 지난번 자살보험금 지급 관련 소송에서 대법원 판결까지 가서 졌지만 지금은 소멸시효 관련 소송이 남아 있다"며 "전직 대법관 출신까지 영입해 놓고 준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자신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생보사 관계자는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을 지급했다가 대법원이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내리면 일종의 배임이 된다"며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는 "대법원에서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이 나더라도 보험금을 이미 지급했다면 다시 회수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상법에도 소멸시효를 인정하고 있다. 1·2심에서도 소멸시효를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다"며 "자살보험금은 6월부터 지급하고 있다. 소멸시효 건에 대해서만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 달라는 것이다. 대법원이 소멸시효를 인정하지 않으면 생보사도 이에 따를 것"이라고 전했다.

금감원 조사에 따르면 삼성생명 등 14개 보험사가 미지급한 자살보험금은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2465억원이다. 이 가운데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이 78%(2003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금감원은 소멸시효와 관계없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생보사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ING생명을 비롯해 신한생명, 메트라이프생명, 흥국생명 등은 소멸시효와 상관없이 자살보험금을 전액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삼성·한화·교보생명 등 빅3는 소멸시효 건은 대법원 판결이 필요하다며 버티기에 나섰다. 이들 생보사가 금감원에 보고한 미지급 보험금 액수는 삼성 607억원·교보 265억원·한화 97억원이다. 이 중 소멸시효 기간이 지나 미지급된 보험금(지연이자 포함)은 삼성 431억원·교보 213억원·한화 83억원 순이다. 이 금액은 특약 보험만 포함한 금액이다. 주계약에서 일반사망과 재해사망을 모두 보장하는 경우를 더하면 미지급 금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생보사 보험심사 관계자는 "직원들 사이에서도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 대법원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하면 자칫 자살을 방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약관대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는 대법 판결이 나오자 회사에서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고 가고 싶은 마음'으로 소멸시효 건을 들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하지만 보통 가족이 사망하고 재산 분쟁 등으로 사망보험금 청구를 2년 뒤에 하는 경우가 많다"며 "보험사는 심사를 통해 사기 의사가 없다고 보면 소멸시효가 지나도 보험금을 지급하는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현재 소멸시효와 관련해서 소송 중인 건수는 8건이다. 금감원은 소멸시효와 관련된 하급 법원들의 판결이 엇갈리고는 있지만 대법원이 소멸시효와 상관없이 지급하라는 판단을 내려줄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민사상 소멸시효 완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금감원은 보험회사가 애초 약속한 보험금을 모두 지급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자살보험금 미지급 사태와 관련해 위법성과 고의성이 판명되면 최고경영진까지 엄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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