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추구 ‘스타트업 컬처혁신’ 4개월…야근 여전하고 상급자 변화는 '아직'
삼성전자가 스타트업 기업식으로 기업문화를 바꾸겠다고 선언한지 4개월이 넘었다. 거대 제조업체의 체질을 소프트웨어 기업식으로 개선하겠단 의도였는데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지난 3월 윤부근 CE부문 대표, 신종균 IM부문 대표를 포함 임직원 6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스타트업(Start Up) 삼성 컬처혁신’을 선언했다. 삼성전자의 모든 임원들이 이날 권위주의 문화의 타파를 선언하고 선언문에 서명했다.
이로부터 3개월 후 삼성전자는 인사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며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했다. 회의 및 보고 문화를 탈피하고 불필요한 야근을 없앤단 내용을 담았다. 또 직급 체계를 7단계에서 4단계로 간소화하고 반바지 착용 및 직원 재충전을 위한 계획적 휴가도 허용키로 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변화가 가장 빨리 찾아온 부문은 반바지 착용이었다. 복수의 삼성전자 관계자에 따르면 남자직원 10명 중 3명 이상은 반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연구개발 부서 등 외부약속이 많지 않은 곳에서 특히 변화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다만 반바지를 입게 하면서도 슬리퍼를 금지하고 로퍼와 같은 종류를 신게 하는 보이지 않는 규정은 있다는 점은 눈에 띄는 부분이다.
직장인들에게 대표적 꼰대문화로 꼽히는 것 중 하나인 회의 문화 역시 변화가 시작됐다. 익명의 삼성전자 관계자는 “회의자체가 줄진 않았으나 시간을 최소화 하고 중요한 것은 결론으로 도출되면 이를 반드시 준수하도록 한다”며 “회의 내용은 회의록으로 남기 때문에 윗사람도 이 결과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눈치 보지 않기 휴가 문화는 이미 정착해 있던 문화였다. 삼성전자 직원들은 대부분 휴가 사유를 따로 보고하지도 않고 윗사람도 묻지 않는다고 한다.
변화가 더딘 부분은 야근 문화였다. 회사는 눈치 보기 잔업을 하지 않도록 권장했지만 사실상 빛좋은 개살구다. 눈치 보기와 무관하게 남은 일이 많아 여전히 야근을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야근은 눈치 보기가 아닌 스스로 남은 일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호칭 및 직급 체계와 관련한 인사제도는 내년 3월부터 시행한다. 7단계였던 직급체계를 4단계로 줄이고 직급 대신 ‘~님’이란 형태로 서로를 부르게 될 예정이다. 이미 이 같은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국내 한 대기업의 관계자는 “직급을 부르지 않게 되면 타 부서 상급자와 업무조율을 할 때 훨씬 수월하다”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조직문화 개선에 성공하기 위한 열쇠는 상급자들에게 달렸다고 조언한다. 윗사람들이 이 같은 변화를 불편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임원들은 이번 호칭 변경 정책에서 제외됐다.
문형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삼성전자의 조직문화 변화 성공여부는 윗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에 달렸다”며 “윗사람이 겉으로만 동등한 호칭을 사용하고 자신과 다른 아랫사람 생각을 무시하거나 회사 안에서만 수평적인 모습을 보이려 한다면 삼성전자 조직문화 변화 시도는 하나마나한 정책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