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사립학교 교원도 공직자 맞먹는 청렴성 필요"…변협·기협 "언론 통제법 될 것" 맹비난
헌법재판소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법(일명 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언론인·사립학교 교원을 포함하고 배우자 금품수수 신고를 의무화 한 것 등 쟁점 조항 모두가 헌법에 합치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김영란법은 지난해 3월 통과된 대로 오는 9월 28일부터 시행되게 됐다.
헌재는 28일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기자협회 등의 김영란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청구 사건에서 심판 대상이 된 모든 조항에 대해 합헌이라며 청구를 기각했다.
이날 헌재는 김영란법 대상에 언론인·사립학교 교원을 포함시킨 부분에 대해 재판관 7(합헌) 대 2(위헌) 의견으로 합헌으로 판단했다. 헌재는 "국가권력에 의해 청탁금지법이 남용될 경우 언론 자유나 사학 자유가 일시적으로 위축될 소지는 있다"면서도 "과도기적인 사실상 우려에 불과하며 심판대상 조항에 의해 직접적으로 언론 자유와 사학 자유가 제한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 "교육과 언론이 국가나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고 이들 분야 부패는 그 파급효가 커서 피해가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반면 원상회복은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며 "사립학교 관계자와 언론인에게는 공직자에 맞먹는 청렴성이 요청된다"고 밝혔다.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직업 중 두 직업만 포함된 점에 대해선 "입법재량이 인정되는 영역"이라고 봤다.
헌재는 또 배우자의 금품 수수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이를 즉시 신고하도록 한 조항에 대해서도 재판관 5(합헌) 대 4(위헌)의 의견으로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배우자를 통해 부적절한 청탁을 시도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고지할 의무를 부과할 뿐"이라며 청구인들이 주장한 '양심의 자유 제한' 주장을 일축했다. 이어 '연좌제'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배우자가 위법한 행위를 한 사실을 알고도 신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처벌하는 것"이라며 "연좌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배우자를 통한 우회적 통로를 차단함으로써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국민 신뢰를 확보하고자 하는 것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또 부정청탁 등의 개념도 여러 법령과 판례 등을 통해 상세하게 규정돼 있다며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봤다. 또 식사비·선물·경조사비 등의 가액 기준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한 조항이 포괄위임금지 원칙을 위반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사회통념을 반영하고 현실 변화에 대응해 유연하게 규율할 수 있도록 탄력성이 있는 행정입법에 위임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아울러 기자협회가 헌법소원을 청구한 부분에 대해선 청구 자격이 없다며 청구를 각하했다. 헌재는 "사단법인인 기자협회가 구성원인 기자들을 대신해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김영란법은 원안에 바탕을 둔 시행령이 마련된 후 오는 9월부터 본격 시행되게 됐다.
김영란법은 지난 2010~2011년 '스폰서 검사'·'벤츠 여검사' 사건에서 검사들이 금품을 받았지만 법원에서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아 무죄를 선고받은 것을 계기로 논의가 본격화됐다.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의 제안에서 시작해 김영란법으로 불린다. 국회는 지난해 3월 여야 합의로 정부안에 더해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원을 추가해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김영란법은 직무관련성과 관계없이 1회 100만원이 넘는 금품·향응을 제공받을 경우 징역 3년 이하 또는 벌금 3000만원 이하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100만원 이하라도 직무관련성이 있을 경우엔 금품수수액의 2~5배에 달하는 과태료를 물도록 했다. 또 배우자의 금품수수를 알고도 신고하지 않을 경우엔 징역 3년 이하 또는 벌금 3000만원 이하에 처해진다.
헌재 결정에 대해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는 "헌재 결정을 존중한다"며 "청탁방지법 시행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가 근절되고 나아가 국가의 청렴도가 획기적으로 제고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권익위는 이어 "법이 안정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남은 기간 동안 시행령 제정, 직종별 매뉴얼 마련, 적용대상자 및 국민을 상대로 한 교육 등 후속조치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덧붙였다.
청구인 측은 거세게 반발했다. 대한변협은 "권력자에게 언론통제수단을 허용하여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후퇴시켰다"며 "심각한 유감"이라고 헌재 결정을 맹비난했다. 대한변협은 성명서를 통해 "국회가 세계에 유례없는 반민주 언론통제 악법을 졸속 통과시키고 헌재마저 이에 눈 감음으로써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빠진 오늘의 현실을 통탄한다"고 비판했다.
기자협회도 "헌법가치를 부정하는 결정"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기자협회는 성명을 통해 "권력이 김영란법을 빌미로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릴 가능성을 경계한다"며 "사정당국이 자의적인 법 적용으로 정상적인 취재·보도활동을 제한하고 언론 길들이기 수단으로 김영란법을 악용하지 않는지 똑똑히 감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은 반응이 엇갈렸다. 새누리당은 "존중한다"면서도 "목적과 취지를 살리면서 예상되는 부작용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 깨끗하고 투명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고 환영한다"며 "이번 판결로 오랜 논란의 종지부를 찍게 돼 매우 다행"이라고 평했다.
재계는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부작용 방지책 마련을 주문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합법과 위법의 경계가 여전히 불분명해 자칫 정상적인 친목교류와 건전한 선물 관행마저 위축될 것으로 우려된다"며 "소비위축과 중소상공인 피해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해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시행에 따른 혼란을 줄이고 어려운 경제상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권익위가 법 적용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