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주 박영선의원, 전면적 집단소송제 도입안 발의…야,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도 추진

요하네스 타머 아우디폭스바겐 대표가 지난 25일 인천 서구 국립환경과학원에서 배기가스 시험성적서 조작 청문회를 앞두고 입장하고 있다. 청문회에 앞서 환경부는 배출가스 발생량을 조작한 아우디폭스바겐차량 34개 차종 79개 모델에 대해 인증취소와 판매금지 결정을 예고했다. / 사진=뉴스1

 

폭스바겐, 옥시레킷벤키저에서부터 최근의 쓰리엠(3M), 이케아(IKEA)까지 국내에서 문제를 야기한 외국계 기업들의 태도는 외국에서와 달리 당당하다. 

배출가스 조작으로 미국에서 147억 달러(약 17조원)의 배상안에 합의한 독일계 자동차 회사 폭스바겐은 한국에서는 끝까지 거리낌이 없었다. 한국을 배상 대상국에서 제외한 것도 모자라 할인 행사를 진행하기까지 했다.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와 판매중지 조치가 내려진 이후에야 보상 계획을 언급했지만 "한국 법은 위반한 적이 없다"는 뻔뻔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인체에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로 수많은 사상자를 낸 옥시,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도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피해 발생 이후 수년 동안 피해자들을 사실상 외면했다. 스웨덴 가구회사 이케아는 위험성이 지적돼 미국에서 판매 중단과 리콜 조치를 취한 서랍장을 한국에선 계속 판매하고 있다.  

국내 피해자들은 이 같은 기업들의 태도에도 피해를 구제받으려면 소송에 참여해야 한다. 모든 피해자들이 함께 소송을 진행하기가 물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개별적으로 소송을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더욱이 소송 참여에 경제적 부담을 느끼는 경우 피해 구제는 사실상 어려워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오래전부터 제기돼 온 것이 집단소송제이다. 피해자 일부가 집단소송을 통해 기업을 상대로 승소한 경우 관련 소송 참여를 스스로 거부한 경우를 제외한 모든 피해자에게 판결 효력이 미치도록 하는 소송제도다. 가령 현재 국내에서 여러 건으로 진행 중인 폭스바겐 소송의 경우 법원에서 집단소송을 허가할 경우 판결이 국내 폭스바겐 승용차 소유주 대다수에게도 효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국내에선 집단소송법이 지난 2004년 증권과 관련해 극히 제한적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엄격한 소송 요건과 복잡한 소송 허가 절차 등으로 인해 집단소송이 활성화되지 못했다. 법 시행 후 11년 동안 집단소송은 겨우 9건 제기됐고, 그중 법원이 허가 결정을 확정한 경우는 3건에 불과했다.

20대 국회가 여소야대 지형이 되며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전면적인 집단소송법 도입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지난달 1일 제출된 무소속 서영교 의원 안과 26일 제출된 박영선 의원 안이 발의돼 있다. 두 법은 큰 틀에서 유사하고 적용범위 등 일부에서만 차이를 보인다. 두 법안 모두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의 문제로 지적된 까다로운 소송 요건 및 허가 절차를 대폭 완화했다.

집단소송은 피해자가 50인 이상일 경우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증권집단소송법과 달리 피해 규모에는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대표로 소송을 수행하려는 피해자는 총원 등이 적시된 관련 소장과 함께 소송허가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하면 된다. 집단소송 형식은 미국식 제도를 본떠 옵트아웃(Opt-out)을 기본으로 했다. 옵트아웃은 피해자 중 '소송에서 빠지겠다'는 제외 신고를 한 경우를 제외한 전원을 포함하는 방식이다. 옵트인은 이와 달리 소송 참여의사를 내비친 경우에만 소송 당사자가 된다.

 

 

박영선(왼쪽에서 두번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6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집단소송법 제정안 발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지지하는 변호사ㆍ교수모임 소속 인사들이 함께 했다. / 사진=뉴스1

 

증권집단소송법과 확연히 달라진 점은 법원의 집단소송 허가 결정에 대해 즉시항고를 할 수 없도록 했다는 점이다. 즉시항고는 보통항고와 달리 결정의 효력이 정지된다. 이 때문에 그동안 증권집단소송법에서 '소송 허가 결정'에 대해 즉시항고가 가능하도록 한 조항은 소송 지연의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전영준 변호사는 지난 5월 경제개혁연대 리포트에서 "본안심리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허가절차가 3심제로 되어 있다 보니 집단소송이 사실상 6심제로 전락했다"며 "허가 결정 확정으로 본안심리에 돌입할 때까지만 해도 수년이 소요된다는 비판이 비등하다"고 지적했다. 박영선 의원실 관계자는 "소송허가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본안 소송에서 다투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 법안은 서 의원 안보다 더욱 강력하다. 우선 '적용범위'가 전 영역으로 가능하게 했다. 앞서 서 의원이 안은 적용범위를 8개 소비자 관련 법안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로 한정한 바 있다. 반면 박 의원 안은 별도로 적용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박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에서 "집단소송제도는 증권 분야뿐만 아니라 소비자분쟁, 환경공해분쟁 등 모든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석명권도 명시했다. 소송 대표당사자가 주장한 내용에 대해 피고가 불충분한 답변·해명을 하는 경우 재판부가 피고에게 설명하도록 명령할 수 있게 했다. 피고가 정당한 사유 없이 법원의 석명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대표당사자 주장을 진실로 인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소송비용의 국가부담 여부를 재판부가 직권으로 결정할 수 있게 했다. 
     
박 의원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지지하는 변호사ㆍ교수모임은 26일 국회 정론관에서 관련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 폭스바겐의 행태를 지적하며 "우리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현행 민사소송법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낸 대표적 사례"라고 강조했다.

현재 국회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더민주·국민의당·정의당)은 집단소송제 도입에 적극적이다. 변수는 새누리당의 태도이다. 국회선진화법상 새누리당의 동의가 없으면 법안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혜훈 의원 등 당 일각에서 집단소송법 도입 필요성을 밝히고 있지만 당 차원에선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앞서 새누리당은 지난 2012년 대선에서 '공정거래법 위반'에 한해 집단소송제 도입을 공약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한편, 야당은 집단소송제와 함께 전면적인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소속 의원들이 낸 개별법안과 별도로 더민주 정책위원회가 기업 불법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액을 순자산의 최대 10%까지 부과하도록 하는 특별법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도 지난달 15일 관련 토론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