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지위 보장과 근로조건 개선에 초점 맞춰야

근로자의 날인 지난 5월 1일 한국노총 '5.1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은 정부의 노동개편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 사진=뉴스1

 

기간제 근로자로 일하고 있는 30대 직장인 김 모씨는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으로 잠을 못 이루고 있다. 2년간의 계약기간 만료가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 근로를 희망하고 있지만 법적인 계약기간이 끝나가고 있어 새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여러 구직 사이트를 기웃거리고 있지만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김 씨 처럼 기간제 근로자로 떠돌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지위와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은 대표적인 비정규직법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법의 이면에는 근로자를 일정시기 동안만 사용할 수 있도록 지침을 제시하는 면도 숨어 있다. 노동계는 노동개혁 가면 속에 악어의 눈물이라고 질타한다. 근로자의 지위 보장과 근로조건 개선 보다는 비정규직만 늘어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기간제법이 개정되면 노동자들은 정규직화라는 희망고문을 당하며 4, 8년 이렇게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약 20개 기간제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이 중 단시간 근로자 가산임금, 차별 시 3배 금전배상 및 확정된 시정명령 효력 확대 등 2개 법안이 원안 가결됐다. 나머지 18개 법안이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0대 국회 들어 2개의 기간제법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기간제법은 기간제 사용기간을 제한, 기간제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도모하고 불합리한 차별을 예방하고자 제정됐다. 우리나라 산업현장에서는 2년 범위 내에서 반복적으로 계약을 갱신하거나 사용기간이 지나면 다른 기간제근로자로 교체하는 등 근로자 고용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이로 인해 근속기간이 줄어들며 임금격차가 커지고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효과가 약해지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기간제법 관련 쟁점 사안은 △기간제 근로의 사용사유 제한 방식 △기간제 근로 사용기간의 예외적 연장 △생명∙안전 업무의 기간제 근로자 사용 제한 △기간제 근로 사용기간 내 갱신횟수 제한 등이다.

 

노동계는 비정규직 확산 방지를 위해 사용사유를 제한하는 방식(비정규직 사용 엄격히 제한, 특별한 사유에 한해서만 쓸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경영계는 이에 대해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한인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기간제 근로의 사용사유를 제한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은 기간제 근로 남용방지 취지로 보인다다만 이 방식을 취할 경우, 신규 구직자 및 실업자 취업 기회가 줄어드는 등 전체 일자리 창출 능력이 감소하고, 기간제 근로자의 업무가 도급이나 외주화로 바뀔 수 있다. 근로조건이 더 열악한 근로자가 증가하는 등 부작용이 따를 수 있어 심도 있게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간제 근로 사용기간의 예외적 연장에 대한 논란도 재점화되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현행 기간제근로자 2년 사용제한 원칙은 유지하되, 예외적으로 35세 이상인 근로자 본인이 신청할 경우 2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근로계약기간을 다시 연장할 수 있도록 한다. 2+2년인 셈이다. 연장된 근로계약기간이 만료될 경우, 사용자는 해당 근로자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해야 하고, 전환하지 않고 근로계약을 종료하는 경우에는 일정한 금액(이직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이직수당 지급은 사용기간 연장과 연계돼 있다. 야당과 노동계는 법안이 제시하고 있는 기간제 근로의 사용기간 연장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기간제 근로의 사용사유를 제한하는 방식 도입을 주장하고 있어 20대 국회 입법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정영훈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은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 연장 자체도 문제지만 이직수당 도입이 더 큰 악순환을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직수당 지급과 고용안정 교환이 법제도적으로 받아들여지면 결국 모든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해서 적용될 위험이 높다는 얘기다. 그는 종국적으로 정규직 근로자 해고에 대해서도 이직수당 지불, 즉 금전보상 지급을 통해 해결하려는 논의로 연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책임연구관은 현행 법률상 계약기간 상한이 2년으로 돼 있는데 2년 내 기간 중에 이뤄지는 계약 갱신 거부에 대해서도 합리적 이유 없이 계약 갱신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법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생명∙안전 업무의 기간제 근로자 사용 제한에 대한 이견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은 선박, 철도, 항공기, 자동차를 이용해 여객을 운송하는 사업 중 생명∙안전과 밀접하게 관련된 업무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관리자 업무에 기간제근로자 사용을 제한한다고 규정짓고 있다.

 

개정안에는 기간제 근로 사용기간 내 갱신횟수 제한에 대한 내용도 포함됐다.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업무 지속성 등을 고려해 그 기간을 합리적을 설정하도록 한다. 합리적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2년 범위 안에서 3회를 초과해 근로계약을 반복∙갱신할 수 없도록 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단기계약 반복 등에 대한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고, 이를 제한하는 입법 방향에 대한 일정 부분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기간제법은 정규직 근로자들과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들과의 불합리한 차별 해소에도 목적이 있다. 그러나 2년을 초과해 사용할 때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간주하는 규정이 포함돼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김경태 한림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기간제법이 되레 기간제 근로자를 양산한다. 현실에서도 근로 계약을 2년 이하(극단적으로는 1개월 등 초단기 계약)로 맺어 2년이 지난 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퇴사시키기나 계약을 갱신하는 등 현행법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편법이 활용된 사례가 다수 적발됐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 단속과 벌칙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한다기업들의 초단기 계약 등 편법 사용 방지가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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