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에 대한 복지부 협의 의무 삭제…사회보장위원회 밀실 운영도 쇄신

 

경기 4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회원들이 지난 5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대 국회 연정(협치) 가능한가?' 토론회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에게 장애인 이동권 관련 기습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달 경기도에서 한 장애인이 활동보조인이 없는 사이 집안에 난 화재로 사망했다. 2014년엔 근육장애인 청년 오지석씨가 활동보조인이 없는 사이 호흡기가 떨어져 숨졌다. 2012년에도 한 중증장애인이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심야시간에 집에서 사고를 당했다. 해마다 중증장애인들이 활동보조인이 없는 시간에 사고를 당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지방복지재정 효율화 과정에서 24시간 활동보조서비스 같은 생존과 직결된 사회보장지원이 깎여 나간 탓이다.

일선 사회복지사들과 당사자인 중증장애인들은 보건복지부가 복지수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필수 예산을 깎는다며 거세게 비판해왔다.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재원으로 운영하는 복지서비스 다수가 밀실에서 축소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자의적으로 복지서비스를 줄일 수 있도록 하는 사회보장기본법이 문제라고 말한다. 

  

현행 사회보장기본법 제 26조는 지방자치단체가 사회보장제도를 신설하거나 변경할 때는 보건복지부와 협의하도록 규정한다. 만일 협의가 불발되면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인 사회보장위원회가 이를 조정한다. 하지만 예산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보장위원회는 전문성이 부족한 전직 고위관료들과 정부 인사들로 구성된다. 그러다보니 조정과정에서 필수 복지사무가 탈락하는 일이 빈번해 빈축을 사고 있다.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은 19대 국회부터 논의됐지만 해결이 안됐다. 20대 국회에서는 내리꽂기식 복지예산 삭감을 막으려는 움직임에 불이 붙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 권미혁·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인공이다.


◇복지사무 신설시 사전 협의 의무화..."사전협의 규정이 지자체 목줄죈다"

남찬섭 동아대 교수는 “지자체 예산으로 시행하는 복지사무에 대해 일일이 복지부와 협의해야 한다면 지방자치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수연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선임연구위원도 “사회보장기본법 제26조는 복지정책 결정 주도권은 전부 중앙정부가 갖고 있으면서 지방에는 책임만 주는 규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윤소하 의원은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중앙정부는 지자체의 사회보장사업에 대해 조언이나 권고만 할 수 있게 하고, 예산을 삭감하도록 강제할 수 없게 하는 내용이다. 윤 의원은 법안을 발의하면서 “현행 사회보장기본법에서는 취지와 다르게 사전 협의제가 사실상 사전 승인제도로 기능하여 지방자치단체를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지역에서 추진하는 다양한 복지사업이 ‘정비’라는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통폐합되고 있으며 피해는 서비스를 제공받아야 할 사회적 약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위성곤 의원이 발의하려고 검토중인 개정안에서는 동법 제26조 제2항에서 지방자치단체장과 협의하는 내용을 아예 삭제했다. 보건복지부의 자의적 예산삭감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위성곤 의원실 관계자는 “이렇게 법안을 바꾸면 지자체가 보건복지부와 협의할 필요가 없다”면서 “서울시 청년수당, 성남시 청년배당 등 지자체가 재정형편과 복지수요를 감안해 만든 복지서비스인데 현행법 상 지자체가 복지서비스 규정 신설할 때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다. 이런 마찰을 줄이고 실효성있는 복지서비스를 시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보장위원회 구성원 전문성 부족... 보건복지분야 인사 아닌 전직 고위관료 출신도 포함

사회보장위원회의 구성도 문제다. 사회보장위는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8명과 정부 당연직 위원 15명, 민간위원 등 30명으로 구성된다. 이에 민간위원 1~2명을 제외하면 보건복지분야 전문 인사가 아닌 전직 고위관료 출신과 정부 성향에 맞는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남찬섭 교수는 “사회보장위는 전 국민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보장과 복지에 관한 정책, 사업에 대해 심의조정 권한을 갖는 정부위원회”라면서 “사회보장위가 권한을 남발하지 못하도록 구성을 개방적으로 해야 한다. 또한, 현재 회의가 비공개로 이뤄지고 있는데, 2주내 발언내용 전체를 공개하도록 해서 국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0대 국회가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에 사회보장위원회 구성과 운영방식도 개선하는 내용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보고 있다. 실효성 있는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되려면 이같은 내용도 반영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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