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카슈랑스·홈쇼핑·온라인 등 판매채널 다양화 영향

 

최근 보험 영업 핵심 채널로 여겨졌던 보험 설계사들의 입지가 줄고 있다 / 그래픽=김재일 기자

15년 전 보험 왕으로 불리며 억대 연봉을 받던 서울 모 지점 소속 보험 설계사 김인순(67)씨는 최근 계약 건수가 줄어들어 걱정이다. 유지율도 예전만 못하다.  발로 뛰며 보험 가입을 권유했던 김 씨는 예순이 넘은 나이 탓에 예전만큼 보험 가입을 유도하기가 쉽지 않다. 젊은 고객들은 필요하면 은행에 방문해 방카슈랑스에 가입하니 김 씨처럼  고객 군을 확보했던 이들이 설자리는 점점 줄고 있다.

 

 김 씨와 함께 근무를 하는 최병진(76)씨는 태블릿 PC를 사용해 고객에게 약관을 설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젊은 고객들에게 밤늦게라도 문의에 응대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입도 늘지 않아 일을 그만두려 한다.

보험 영업 핵심 채널로 여겨졌던 설계사들의 입지가 줄고 있다. 보험 연구원이 17일 발표한 '전속 설계사 채널의 향후 전망과 시사점'에 따르면 설계사 수 감소와 고령화, 보험 판매 채널의 다양화가 전속 설계사의 영업력에 의존하는 보험회사에 영향을 줄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말 기준 전속 설계사 수는 생명보험 기준 10만2148명으로 2012년 11만6457명보다 12.3% 줄었다. 손해보험 기준으로는 8만1148명으로 14.6% 감소했다. 설계사 수가 줄어드는 가운데 고 연령층의 비중은 높아지고 있다. 50대  비중은 2007년 12%에서 2015년 29%로 두 배 넘게 상승했다. 반면 20대는 2007년 8.7%에서 2015년 2.6%로 낮아졌다. 30대도 38.5%에서 20.3%로 줄었다.

보험 설계사들의 수입이 안정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력 감소 추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 평균 연봉은 2012년 기준 약 3100만원 수준이지만 실적에 따라 소득 격차가 커 19%가 월 109만원이하 급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판매 채널 증가도 설계사들의 설 자리를 좁히고 있다. 설계사의 보험판매 비중은 생명보험의 경우 2008년 39.7%에서 2015년 19.5%로 축소됐다. 은행 창구에서 보험을 판매하는 방카슈랑스 등장 이후 설계사 판매 비중이 줄어든 것으로 풀이된다. 홈쇼핑, 온라인 등 새로운 보험 판매 채널 증가도 발로 뛰며 고객 군을 확보하는 설계사들의 입지를 좁히고 있다.

김석영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 판매 채널은 언제든 확보가 가능하고 유지 관리 측면에서 설계사를 많이 보유하는 것보다 온라인, 홈쇼핑 등에서 판매할 경우가 편리하다"고 말했다.

보험업계는 방카슈랑스 판매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은행 영업점에서 방카슈랑스를 판매할 때 판매 비중을 제한하는 25%룰이 있지만 보험업계는 이마저도 판매 채널을 뺏기고 있는 형편이라고 주장한다.

서울 한 보험회사 역삼 지점에 근무하는 라혜진(58)씨는 "보험 영업을 하는 직원들이 발품을 팔아 가입자를 모으는 상황에서 은행이 편하게 앉아 보험을 판매하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라며 "보험업계 직원들의 밥그릇까지 뺏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금융권은 오히려 25%룰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은 지난 23일 한 세미나에서 "방카슈랑스 규제를 완화해 소비자 선택권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희문 국민은행 WM상품부 팀장은 2003년 방카슈랑스 도입 후 설계사 수는 2004년 26만2000명에서 지난해 39만6000명으로 증가했다며 방카슈랑스가 보험설계사 생존을 위협한다는 우려는 지나치다고 언급했다.

채널 다양화와 생존 위협을 받는 설계사 활용방법을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정립해야 한다고 김 연구위원은 조언했다. 김 연구위원은 "설계사 조직이 재무 설계나 건강관리 같은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업그레이드 하고 고객과 양방향 소통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살리도록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전속 설계사 조직의 규모에 의존한 경쟁이 사라지는 만큼 보험사들도 상품과 서비스 다양화로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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