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집회 이후 피해 사례 속출”...사측 “면담요청 했을 뿐, 강압은 없어”

지난달 28일 대한항공조종사노조(KPU)는 서울 서소문 대한항공 빌딩 앞에서 '대한항공 임금정상화를 위한 윤리경영촉구결의대회'를 열었다. / 사진=박성의 기자

 


임금협상에서 촉발된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과 사측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조종사 노조에서 사측 경영이 불투명하다며 세무조사 청원운동을 벌이자 사측은 “조종사 노조가 근거 없는 선동행위를 벌이고 있다”며 노조원에 대한 향후 법적 조치 등을 검토하겠다는 강경책을 들고 나왔다.

조종사 노조는 사측이 후방에서 정당한 노조활동을 방해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사측이 집회에 동참한 부기장들의 기장 승급을 의도적으로 막고 있으며, 절차 없이 교관 직위를 박탈하고 대형기종 전환에서도 불이익을 주는 등 의도적인 ‘노조 분쇄’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대한항공조종사노조(KPU)는 서울 서소문 대한항공 빌딩 앞에서 '대한항공 임금정상화를 위한 윤리경영촉구결의대회'를 열었다. 조종사노조가 서소문 사옥 앞에서 집회를 열기는 2000년 이후 16년 만이다.

집회에는 비행으로 참석하지 못한 조종사 900여명을 제외한 150여명의 조종사가 참석했다. 조종사노조는 집회를 통해 “대한항공이 조양호 회장 일가의 잇속 챙기기에만 전념하고 조종사 복지는 등한시하고 있다”며 ▲조종사 임금 37% 인상 ▲안전유지비용 확대 ▲외국인 기장 불법파견 금지 ▲세무조사 시행 등을 요구했다.

노조의 이 같은 요구에 사측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임금을 올리기 위해 회사를 볼모로 삼고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온건 성향의 최고경영자(CEO)로 알려진 지창훈 대한항공 사장은 결국 강경책을 빼들었다.

지 사장은 집회 다음날인 6월 29일 조종사들에게 본인 명의 서한을 발송해 "조종사들의 부적절한 행동을 부추기는 일부 지도부의 해사 행위를 더 이상 인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다수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회사는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관계자는 “조양호 회장이 한진해운 사태 등으로 심기가 불편하다. 이 상황에서 서소문 빌딩 앞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지 사장으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지 사장이 유화책을 쓰기에는 그룹 내 분위기가 따라주지 않는다. 인내라는 표현을 쓴 것도 그 때문”이라고 밝혔다.

조종사 노조는 지난달 서소문 집회 이후 사측의 노조분쇄 행위가 본격화 됐다고 주장한다. 28일 노조위원장의 부기장 강등을 시작으로 집회 참여자에 대한 불이익이 점차 표면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에 따르면 사측은 집회에 참여한 노조원 명단을 확보하고 이들에 대한 직·간접적인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을 요구한 노조원은 “(집회 이후) 사측이 기종 전환 교육중인 부기장 동료에게 중간 심사 앞두고 전화 와서 사측과 면담에 응하지 않으면 더 이상 교육 진행이 불가하다고 통보 했다더라”며 “즉, 조종사들이 대한항공을 상대로 진행하고 있는 소송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서명하란 것이다. 7월 들어 노조 동기들 다수가 이 같은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대한항공 퇴직 조종사 및 현직 조종사 24명은 지난해 말 대한항공을 상대로 “교육비가 과다 청구됐으며 사측이 교육비 산정에 대한 근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현직 조종사 113명이 이 소송 내용에 찬성한다는 사실확인서를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8월 말 1심 판결을 앞두고 노사 모두 한 치 양보 없이 대치중이다.

또 조종사 노조는 집회에 참여한 기장승격교육 입과 예정자 3명이 특별한 사유 없이 교육 보류를 통보받았다고 했다. 기장승격 훈련 및 심사를 완료하고 국토교통부 심사가 끝난 기장 2명은 임명식 앞두고 돌연 발령이 보류되기도 했다. 집회에 참여한 교관 기장 5명은 사실상 면직됐다. 절차상 면직발령은 안 났으나, 교관행위에서 배제되고 일반비행 스케줄만 소화하고 있다.

집회에 참여한 부기장 1명은 기장 교육 입과 위한 심사(up-check) 스케줄에서 갑자기 배제됐다. 최신예 기종인 A380 항공기 운항 교육을 마친 부기장 4명은 사측 면담에 응해야만 인사발령을 내주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조종사 노조 홈페이지에는 이 같은 사례를 말하며 사측 조처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들이 줄을 잇고 있다.

대한항공은 강압적인 면담 요구는 없었다고 반박한다. 오히려 교육에 불만을 갖고 있는 조종사 의견을 존중하기 위한 민주적인 절차였다는 주장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사실확인서에는 원치 않는 교육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동의한 조종사를 상대로 면담을 진행한 것”이라며 “사측 입장에서는 굳이 교육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조종사를 상대로 기종 전환 등을 해줄 이유가 없다. 오히려 본인 의사를 존중하려 면담을 갖고자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교관 면직 및 기장 발령 보류 사례에 대해서는 “내규에 의한 징계는 아니다. 집회 탓에 이뤄진 처분은 아닐 것”이라며 “다만 해사행위나 충성도가 떨어지는 직원이 특정 보직에서 내려오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면에서 인사고과는 언제든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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