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과 형평성 맞게…근로자 가족 생계 위한 보장성 강화도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출근길을 재촉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직장인 김 모씨(48)는 퇴근 길 통근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길을 건너던 중 맞은 편에서 오는 차량을 발견하지 못해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모씨(32)는 상사로부터 조기 출근 지시를 받고 출근하다가 다쳤다. 박 모씨(38)는 공휴일 회사의 급한 부름을 받고 출근하는 길에 사고가 발생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이 세가지 사고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했다. 통근버스를 타기 전에 발생한 사고는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발생한 사고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기 출근 역시 사업주가 어떤 교통편을 이용하라고 지시했거나 경로를 지정해주지 않았고 별도 교통편을 제공하지 않았을 경우 업무상 재해가 아니다. 공휴일과 주말 출근도 법률적 판단은 출퇴근 과정이 사업주 관리에 따른 것이냐가 관건이다. 사업주가 별도의 교통편을 이용한 출퇴근 과정을 지시하지 않았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에 따라 업무상 재해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으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법) 개정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출퇴근 사고를 산재로 인정하는 산재법 개정안이 쟁점 사안은 아니었다. 이미 산재를 인정받고 있는 공무원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고용노동부가 2010년부터 개정안을 준비했다. 산재법 개정안은 19대 국회 회기 중인 지난해 9 16일 새누리당 원유철 의원 등 159인이 발의했다. 정부와 여당은 노동개혁 5개 법안 패키지 처리를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야당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다. 무쟁점 법안마저 볼모로 잡아 협상의 대상으로 이용해서다. 20대 국회 개원과 함께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은 산재법 개정안을 재발의했다.

 

현행법은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이나 그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서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산재보험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주가 제공하는 통근버스를 이용할 수 없는 근로자는 산재보험급여가 지급되지 않는다. 공무원, 교사, 군인 등은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보호하고 있는 것에 비해 형평성 논란이 제기됐다따라서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폭넓게 산재보험으로 보호하려는 취지다.

 

개정안은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 지배관리 하에서 출퇴근 중 발생한 사고뿐 아니라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으로 출퇴근하던 중 발생한 사고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다만 출퇴근 경로에서 벗어난 경우 필요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재해로 인정되지 않는다. 사고 및 그 이후의 왕복 중 사고에 대해서도 출퇴근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다.

 

노무법인 관계자는 근로자 입장에서 출퇴근시 사고가 났을 경우 당연히 재해로 인정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출퇴근시 공무원과 일반 근로자의 차별에 대한 위헌 판결도 있다. 이런 차별화를 근본적으로 없애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택수 경제정의실천연합회(경실련) 간사는 산재보험의 핵심은 보장성 강화라며 근로자가 사고를 당하더라도 근로자와 가족의 생계에 문제 없도록 정부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산재법과 근로기준법상 산재보험 가입을 결정하는 근로자성(근로자 해당 여부)은 아직 논란 거리다. 특수고용직의 산재보험 가입이 제한되는 허점을 드러냈다. 이에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특수고용직의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산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행 산재법은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골프장캐디, 레미콘기사, 택배기사, 전속 퀵서비스기사 등 6개 특수고용직종에 대한 특례가입을 허용하고 있다. 보험설계사는 전국 33만여명으로 가장 규모가 크지만 산재보험 가입률은 10% 미만이다. 골프장캐디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5%도 채 되지 않는다.

 

이처럼 산재보험 가입률이 낮은 건 사업주가 보험료 전액을 부담하는 일반 근로자와 달리 특수고용직의 경우 노사가 보험료를 절반씩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산재법은 특수고용직 당사자 신청에 의해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수 있는 적용제외 조항도 가입률 하락을 조장하고 있다.

 

한정애 의원은 산재법에는 특수고용직의 산재보험 적용을 위한 특례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경우 적용제외를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지난 4월 현재 특수고용직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10.58%로 매우 저조하다고 말했다. 결국 보험료를 줄이기 위해 사용자가 적용제외 신청을 유도했거나 강요한 것이란 지적이다.

 

한 의원은 특수고용직의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허용토록 했다.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특수고용직의 산재보험 가입률을 높이고 사각지대도 일부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정연택 충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특수고용직 산재보험 적용제외 조항의 경우 가입 면제 사유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장기적으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으로 산재보험 적용 대상을 구분할 것이 아니라 산재법에 보험적용 대상을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기준 신설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노무법인 관계자는 제도법상 형평성과 일관성을 강조했다. 그는 현행 근로기준법과 산재법상 인정하는 근로자성 범위가 다르다근로자성의 명확한 범위 정립이 선행돼 산재법으로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산재법과 근로기준법상 인정 기준이 달라진다면 법의 격차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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