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용 전력사용량 60%, 가정용은 13%…오히려 한전은 “서민들 전기 사용 줄여야”
한국전력공사의 전력예비율이 2년 만에 한 자릿수로 떨어졌다. 한전 측은 폭염으로 전력 사용량이 폭증했다며 국민들에게 전력 소비를 줄일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누진제 등 비합리적인 전기요금 정책으로 서민들의 전기사용량이 적은 상황에서 이들에게 전기 사용을 더 줄이라고 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지적한다.
한전은 11일 전력사용량이 7820만㎾까지 올라 전력예비율이 9.3%로 떨어졌다고 13일 밝혔다. 한전에 따르면 전력예비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진 것은 2년 만이다. 전력예비율이란 발전사가 생산한 전력 중 기업과 가정에 공급하고 남은 양을 나타낸 수치다. 정부는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해선 전력예비율이 15% 가량 유지돼야 한다고 말한다.
한전 측은 최근 연이은 폭염으로 전력 사용량이 폭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민들에게 전기 사용을 줄일 것을 권고했다. 조환익 한전 사장은 “국민들은 여름철 피크 시 불필요한 전력 낭비를 자제하고 모두를 위해 절전에 동참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전이 서민들에게 전기 사용을 줄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한다. 국내 전체 전력사용량 중 가정에서 사용하는 양은 미미하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한국의 1인당 가정 전력 소비량은 1278kWh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34개국 중 26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전력 소비량인 2335kWh의 55%에 해당한다. 미국의 29% 불과하고 일본의 57% 수준이다.
전력생산량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국제에너지기구가 5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총 전력생산량은 1990년 7629TWh에서 2013년 1만796TWh로 41.5% 늘었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전력생산량은 105TWh에서 538TWh로 410.5% 급증했다.
가정용 전력소비량이 많지 않고 전력생산량도 크게 늘었지만 전력이 부족한 이유는 무엇일까. 원인은 산업용 전력사용량에 있다. 한전 자료에 따르면 5월 전체 전력사용량 중 산업용 비율은 60%에 달한다. 가정용은 13%에 불과하다.
산업용, 공공·상업용을 가정용 전력소비량에 추가하면 국내 1인당 평균 전력소비량은 9628kWh로 급증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1인당 평균 전력소비량이 8위까지 오른다.
이 같이 가정용과 산업용 사이에 전력사용량 불균형이 일어나는 이유는 한전이 가정용 전력에만 부과하는 막대한 누진요금 때문이다. 누진제는 전기를 많이 쓰면 비용을 더 물게 해 전력소비를 줄이는 요금 체계다.
전문가들은 누진제가 국내 상황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은 정책이라고 말한다. 김남일 에너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제철소 등에서 내는 산업용 전기 요금은 가정용과 비교해 훨씬 저렴하다”며 “일례로 일반 가정에서 한 달 간 420kWh를 사용하면 전기요금이 약 10만원 나온다. 이는 서민들에게 부담스러운 비용이다. 하지만 공장에서 같은 양의 전력을 사용하면 가정용 전력 가격의 40% 수준인 4만원만 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누진요금제는 1970년대 발생한 2차 오일쇼크 이후 국가에서 전력 소비를 줄이기 위해 만든 제도”라며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11위인 한국이 아직도 후진국형 전기요금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전을 상대로 소비자 소송을 진행 중인 곽상언 변호사(법무법인 인강)는 “모든 혜택을 몰아주고 있는 산업용전력에 대해서는 말이 없고 누진세로 불이익 받고 있는 서민에게 전기를 아껴 쓰라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전기요금 체제에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