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8·15 특별사면을 통해 집권 후 처음으로 재벌 총수일가를 사면했다. 최태원 SK 회장이 그 대상이다. 당시 정부는 구체적 사면 경제인 선정 기준을 밝힌 바 있다. 올해 이 기준을 적용할 경우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될 재벌 후보군은 극소수로 줄어든다.
정부가 지난해 내놓은 '경제인' 선정 기준을 보면 ▲현 정부 출범 이후 비리사범 ▲최근 6개월 내 형이 확정된 자 ▲형 집행률이 부족한 자 ▲벌금·추징금 미납자 ▲뇌물범죄·안전범죄 등은 사면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 같은 기준이 마련된 것은 박 대통령이 과거 정권의 사면에 대해 '원칙 없는 사면권 남발'이라며 "원칙 있는 사면권 행사"를 강조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당시 "특정한 사람을 생각하고 사면을 한 게 아니다. 이번에는 룰 세팅을 먼저 했다"며 "그 후에 경제5단체 등 각종 단체에서 사면 민원을 제기한 사람들이 세팅 기준에 맞는지 봤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정부는 경제인 사면 이유로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재기 기회 제공'을 이유로 들었다. 이는 지난 11일 박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 주재 시 언급한 올해 특별사면 이유와 동일하다. 대통령의 발언을 통해 유추해보면 올해 재벌 특별사면 대상자 선정에도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기준이 적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사진 왼쪽부터)
이 경우 대상자가 될 수 있는 재벌 총수일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줄어든다. 대표적으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이다.
김 회장은 횡령·배임·조세포탈 혐의로 2011년 1월 기소돼 지난 2014년 2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는 재판 과정 중에 피해액을 전부 변상해 정부가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킨다.
최 부회장은 2012년 1월 형인 최태원 SK 회장과 함께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돼 2014년 2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 6월 확정 판결을 받았다. 복역 중인 최 부회장은 오는 10월 만기출소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마련된 대상자 선정 기준이 올해도 적용될지는 알 수 없다. 이는 특별사면 선정 기준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 대통령 의지대로 사면 대상자가 선정되는 상황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면권 행사는 헌법 79조에 명시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대통령은 사면법에 기반해 사면권을 행사한다. 특히 특별사면과 관련해선 사면법 9조에 '특별사면, 특정한 자에 대한 감형 및 복권은 대통령이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사면법과 시행규칙 어디에도 특별사면 대상자 선정에 대한 기준은 나와있지 않다. 단지 법무부 장관이 대상자를 대통령에게 상신(上申) 하기 위해선 사면심사위원회 심사를 통해 진행돼야 한다고 규정돼 있을 뿐이다.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에게 특별사면 등을 상신해줄 것을 신청할 수 있다.
법무부 장관이 대상자를 상신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사면심사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해선 사면법 10조 2항과 사면법 시행규칙에서 이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사면심사위원회는 법무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총 9명으로 구성된다. 공무원이 아닌 외부 인사는 '4명 이상'으로, 각 임기 2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비외부위원 자격이 주어진 보직은 법무부에서 차관, 기획조정실장, 법무실장, 검찰국장, 범죄예방정책국장, 교정본부장, 감찰관, 대검찰청에서 기획조정부장, 공판송무부장이다. 외부 인사 자격은 판사, 변호사, 법학교수와 함께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8월 광복절 특사 발표를 위해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 들어서고 있다. / 사진=뉴스1
법무부 장관은 '외부인사 4명 이상'을 포함해 이들 중 8명을 사면심사위원에 대한 임명권한을 갖고 있다. 사실상 외부인사를 누구로 임명하느냐에 따라 사면심사위원회 운영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구조이다.
더욱이 논의 결과만 담기는 심의서는 '특별사면 행한 후 즉시' 공개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어떠한 논의 과정을 통해 대상자를 선정했는지를 알 수 있는 '회의록'은 특별사면 후 5년이 지나야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더욱이 사면심사위원들에 대해선 비밀 누설 금지 조항도 있다.
이 같은 이유로 특별사면은 늘 깜깜이 대상자 선정 논란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사실상 '대통령 마음대로' 대상자가 선정된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정부 한 관계자도 지난해 8·15 특별사면 발표 당시 "실무적으로는 법무부에서 상신하지만, 실질적으로 사면을 하는 건 대통령"이라며 "사면은 대통령 의지로 봐도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