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C 수요 급증에 안전관리 구멍…입지선정 조속히 끝내야
저비용항공사(LCC)의 정비불량 문제가 도마에 오른 가운데 국내 항공정비(MRO) 산업이 답보 상태에 빠졌다. 공용격납고 신축 부지 등을 놓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사이 LCC가 정비 인프라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같은 기간 LCC 승객은 급증하고 있어 정부가 MRO 발전방안을 빠르게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제주항공의 객실여압장치가 고장나며 급강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월에는 진에어 항공기가 출입문 고장으로 회항했다. 당시 승무원을 포함한 탑승객 모두 인명피해는 없었다. 다만 LCC 항공기의 고장 발생 사례가 속출하자 국토교통부는 지난 1월부터 국내 6개 저비용항공사의 안전관리체계 전반에 대해 특별 안전점검을 시행했다.
4월에는 ▲적정 안전운항체계 확보 ▲정비역량 및 전문성 제고 ▲조종사 기량 및 자질 향상 ▲정부의 안전평가 및 감독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저비용항공사 안전강화 대책을 마련했다. 국토부는 이 같은 조처로 LCC 안전이 대폭 향상됐다고 자신했지만 LCC 고장 사고는 최근에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13일 오전 서울에서 출발한 진에어 LJ211편 여객기가 9시50분쯤 일본 간사이공항에 긴급 착륙했다. 항공사 측은 간사이 공항 긴급 착륙과 관련해 “해당 항공편의 유압 시스템에서 이상 징후가 보여 간사이공항에 긴급 착륙했다”고 밝혔다.
해당 여객기 기장은 간사이 공항에 착륙을 앞두고 랜딩기어의 유압시스템에 오작동이 감지되자 관제탑에 긴급 신호를 보낸 뒤 수동레버로 랜딩기어를 조작해 여객기를 착륙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5월에는 에어부산 여객기가 엔진고장으로 결항했다.
업계에서는 국토부의 LCC 안전대책이 주로 저비용항공사의 자발적인 안전 관리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대형항공사 관계자는 “정부는 안전도 평가, 불시 감독, 위법사항 적발 시 처벌 등을 통해 LCC 안전관리를 하겠다고 한다”며 “LCC 항공기 정비 대부분이 외국 업체에 맡기는 구조다. LCC 규모가 아무리 커졌다고 하더라도 자체 정비인력 양성 등 정비 인프라에 대한 투자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교통연구원이 2013년 발표한 국내 항공사 외주 정비비율을 보면 대한항공 26%, 아시아나 84%, LCC 95%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은 자체 정비시스템과 인력을 갖추고 있지만 LCC의 경우 정비 인프라가 부족해 중요한 정비는 해외에 위탁할 수밖에 없다.
항공정비체계 확립이나 안전 관리를 항공사에게만 맡길 게 아니라 정부가 직접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항공사고 예방 차원에서라도 정비 인력 양성과 정비 인프라 확충에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방안은 정부 주도의 MRO 산업단지 육성이다. 주요 거점 공항 근처에 항공정비시설과 인력을 갖춘 일종의 ‘정비 허브’를 만드는 것이다. 현재 싱가포르 창이공항은 MRO 산업단지를 조성, 180여개 이상의 MRO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유럽의 허브인 스키폴공항은 성장전략으로 MRO를 선정, MRO 단지를 조성해 약 30여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국내에서는 인천공항이 대표적인 MRO 입지 부지로 떠오르고 있지만 설립까지 과정이 순탄치 않아 보인다.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을 이유로 사천, 청주 등에 MRO 단지 건립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MRO를 경제적 관점에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MRO의 목적은 효율적인 항공기 안전 관리인만큼, 항공사와의 근접성, 항공 사고 시 빠른 대처 가능여부 등이 고려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LCC 관계자는 “MRO 산업이 발전한다면 항공사로서도 환영할 일이다. 다만 MRO 위치선정에 있어 정부가 너무 안일한 인식을 가진 게 아닌가 싶다”며 “MRO 단지를 지역경제에만 초점을 맞춰 지으면 자칫 ‘산업단지에서 소 키우는 격’처럼 MRO 단지가 제 역할을 못하게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