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잔류이후 디지털 전략 본격화…해외시장과 모바일에 미래 걸어

지난해 10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23회 한국국제사인디자인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된 디지털 옥외광고물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뉴스1

 

프랑스 업체와의 매각협상 결렬로 결국 삼성그룹에 잔류하게 된 제일기획이 디지털 전략을 본격적으로 꺼내들었다. 지난 4월 구글과 손잡은데 이어 이번에는 페이스북과도 협업하기로 했다. 디지털 무대로 공세적으로 치고 나가겠다는 의지다. 광고산업 패러다임 변화가 이 같은 움직임을 유인하는 모양새다.

제일기획과 페이스북이 11일 서울 역삼동 페이스북 코리아 사옥에서 ‘디지털 광고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앞으로 페이스북은 제일기획에 광고 운영 인력과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점차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페이스북 광고 등 디지털 전략을 조언할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를 활용한 광고 상품도 공동 개발할 예정이다. 이번 협약은 두 업체 모두에게 이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제일기획은 SNS 광고 역량을 강화할 기회를 얻게 됐다. 페이스북은 제일기획 광고주를 통해 시장 영향력 확장에 나설 수 있다.

제일기획은 올해 성장전략으로 디지털 미디어 사업을 꼽은 바 있다. 페이스북은 세계 디지털 광고의 핵심에 서 있다. 현재 세계 300만개 이상의 기업이 페이스북을 광고매체로 활용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올해 1분기 광고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7% 증가했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 우수한 플랫폼을 활용한 다양한 디지털 광고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제일기획은 지난 4월 구글과 디지털 미디어 광고에 대한 업무 협력을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구글의 온라인 플랫폼과 연계해 디지털 마케팅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당시 제일기획은 유튜브 상위 5% 인기채널을 활용하겠다고 밝혔었다.

제일기획의 디지털 사업 추진은 오래 전부터 예견된 움직임이다. 다만 최근까지 제일기획이 매각 매물로 시장에 나왔었던 점을 감안하면 예상보다 더 빠른 움직임이라는 평가다. 그만큼 제일기획이 디지털 시장을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엄밀히 말해 제일기획이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다. 제일기획은 올해도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해외시장 실적 호조 덕이 크다. 지난 4월 인수한 영국 마케팅업체 파운디드 실적도 연결기준 매출에 반영돼 이익을 1% 이상 끌어올릴 전망이다. 제일기획은 매각설에 휩싸인 1분기에도 지난해보다 10% 이상 성장했다.

김민정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제일기획의 영업이익을 지난해보다 9.5% 증가한 1393억원으로 내다봤다. 여전히 광고업계 최대 우량주인 셈이다.

제일기획의 국내 매출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은 삼성전자다. 올해는 삼성전자 갤럭시S7이 판매호조를 보이면서 광고물량이 증가했다. 2분기 실적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현대차를 뒷배로 둔 이노션도 마찬가지다. 현대차의 신차가 판매호조를 보일수록 이노션 실적도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올해 3분기는 브라질 리우올림픽(8월) 특수 덕에 국내외 광고시장이 호조를 띨 전망이다. 제일기획 입장에서는 이번 올림픽의 메인 스폰서가 삼성전자라는 점도 호재다. 다만 브라질과 국내의 시차가 너무 커 광고효과가 크게 반감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도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업계에서는 제일기획과 이노션 등 모기업 광고 물량으로 점유율을 키워왔던 업체들이 근본적 위기에 닥쳤다고 평가한다. 국내 광고시장이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원인은 거시경제의 저성장 기조다. 가장 큰 광고비를 집행하던 기업들의 지갑이 꽁꽁 얼었다. 자연스레 파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올해 역시 저성장 내지 정체를 겪을 전망이다.

광고 산업을 지탱하던 지상파TV 광고규모가 줄고 있는 현상도 위기를 부채질한다. 미디어 소비패턴 변화가 이 같은 패러다임 전환을 앞장서 이끄는 모양새다. 더 이상 시청자들이 TV 앞에 가만히 앉아있는 시대가 아니다. 현재 지상파 TV 광고 규모는 1조7000~8000억원대다. 그 사이 모바일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1조원대를 넘어섰다.

임대기 제일기획 사장이 지난 2014년 10월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광고주대회에서 광고주가 뽑은 올해의 광고인상을 수상한 뒤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 사진=뉴스1

 

SBS의 광고시장 위상변화가 이런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광고는 SBS 전체 매출의 70% 가까이 차지한다. 올 상반기 화제의 드라마였던 ‘육룡이 나르샤’는 최고 시청률 17.3%를 기록했다. ‘리멤버’는 20%를 넘어섰다. 두 드라마 모두 광고 완판을 기록했다.

그런데도 SBS 전체 광고 판매율은 10% 이상 줄었다. 사실상 방송사 시청률이 광고판매로 이어지던 방송 산업 수익 모델이 사라져가는 셈이다.

김회재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시청률과 판매율의 괴리다. SBS시청률은 우수한 작품 편성에 힘입어 부진을 딛고 회복 중이나 전반적인 광고경기 침체가 지속되며 광고판매율은 지속 하락하고 있다”며 “1분기 판매율은 지난해보다 14% 줄고 2분기 역시 10%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시즌제 콘텐츠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非지상파의 선전이 눈에 띈다. 시즌제는 고정 시청자층 덕에 광고주에게도 매력적인 프로그램 형식이다. tvN의 인기 시즌제 예능인 ‘삼시세끼’의 경우 이미 지난 시즌부터 동시간대 지상파 예능프로그램 광고단가를 따라잡았다.

하지만 이 역시 장기 지속가능한 모델은 아니다. TV의 위기 탓이다. 방송사들도 광고수익 확보를 위해 TV 밖을 바라보고 있는 모양새다. CJ E&M이 웹 예능 ‘신서유기’를 내놓은 까닭이다. 한 지상파 방송사의 콘텐츠사업 팀장도 “최근 방송사의 화두는 웹 드라마를 어떻게 잘 만들 것인가”라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되면 광고를 대행하는 제일기획 입장에서도 물량 수주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제일기획과 이노션 등이 해외로 눈을 돌린 까닭이다. 현재 제일기획의 해외비중은 72% 수준까지 올라왔다.

다만 해외시장도 마냥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모바일 패러다임 확산은 속도만 다를 뿐 결국 세계적 차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PwC에 따르면 오는 2017년에 글로벌 디지털 광고 시장이 TV광고를 앞지를 전망이다. 제일기획이 굳이 구글과 페이스북 등 글로벌 업체 손을 잡은 까닭도 해외시장을 겨냥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결국 돌고 돌아도 결론은 디지털이 될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모바일이다. 김대연 TBWA KOREA 미디어플래닝팀 수석국장은 ‘2016년 광고시장 전망 및 효율적인 미디어전략’을 통해 “2016년 모바일 광고 시장은 30% 이상 성장할 전망이다. 특히 동영상 콘텐츠의 수요 확대로 인해 유튜브와 SMR,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까지 치열한 경쟁이 전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수석국장은 디지털 전환을 위한 과제에 대해 “현재 대다수 광고회사들은 미디어플래닝 부서와 디지털 부서가 분리된 채 필요시 협업하는 프로세스를 따른다”며 “이럴 경우 오프라인과 디지털을 아우를 수 있는 종합 플랜을 구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업계만 디지털 광고 화두에 빠진 것은 아니다. 정부도 관련 법령을 정비하며 새 시장 패러다임에 적극 대응하는 모양새다. 행정자치부는 지난 4일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앞으로 일반‧전용주거지역과 시설보호지구를 제외하고 디지털 동영상 광고, 전자게시대 등 최첨단 방식의 옥외광고물을 설치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행자부는 미국 타임스퀘어와 같은 디지털 옥외광고 명소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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