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 국가에 대해서는 배상 차별…향후 폴크스바겐에 독 될 수 밖에 없어

피노키오가 있었다. 외모가 특출 나지는 않아도 인기로 치면 학교에서 1~2등은 했다. 사랑받는 비결은 왠지 모를 성실함, 또는 정직해 보이는 이미지.  그런 피노키오를 선망하던 이들에게 비보가 날아든 건 작년 9월경이다. 피노키오의 정직은 허구였으며, 그가 뱉은 수많은 말이 거짓이었다.

실망은 전교생에게 퍼져나갔다. 누구는 피노키오에게 해명을 요구했고 누구는 화를 냈다. 갈피 잃은 피노키오는 학생회장을 찾았다. 학생회장은 처음으로 피노키오의 거짓을 들춰낸 고발자였기에, 피노키오는 가장 먼저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죄를 고했다.

회장은 사과만으로는 안 된다고 했다. 반성문을 써내고 그 동안의 거짓으로 준 피해를 메울 방안을 강구해 오라고 했다. 피노키오는 그러겠다고 대답했고 반항하지 않았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회장의 주먹이 무서웠는지 아니면 치부를 들춘 고발자에 대한 예의였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비굴함 덕에 피노키오는 회장의 화를 돋우지 않았다.

피노키오의 비굴(卑屈)은 약자 앞에선 비열(卑劣)이 됐다. 회장보다 작고 힘없는 이들 앞에선 굽힐 줄 몰랐다. 입으로 사과를 말했지만 고개는 뻣뻣했으며, 회장에게 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보상안을 내놓으라는 요구 앞에선 귀를 닫았다. 회장의 연락은 귀신같이 응답했지만 그 외 연락들은 모두 수신거부.

거짓된 피노키오였지만 인기가 꽤나 유지됐기에, 사실 그는 회장의 주먹만 피해내면 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다만 “모두에게 미안해”라며 구걸한 동정을 믿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피노키오의 사과는 모두를 말했지만 그의 허리가 굽는 곳은 오직 한곳만을 향했기에. 그가 교칙을 들먹일 수 있는 곳은 오로지 약자 앞에서였다.

‘피노키오 폴크스바겐’의 신뢰는 이렇게 무너져 가고 있다. 자동차 시장서 학생회장 격인 미국에서는 151억3000만달러(약 17조3389억원)를 배상하기로 합의했지만 유럽과 한국 등에는 각국 규정을 근거로 배상을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조작 사실을 인정조차 하지 않은 ‘껍데기 리콜안’을 제출해 환경부로부터 세 차례나 퇴짜 맞았다.

피노키오는 생각보다 우매해 보인다. 폴크스바겐의 거짓말이 처음 밝혀졌을 때 전 세계가 바란 건 사과, 그리고 상식선의 조치였다. 법을 우롱하는 조작을 저질러놓고 보상을 말할 땐 법을 내세우는 모습은 마치 한편의 블랙 코미디다. 비(非)상식이다. 결과는 이제 숫자로 드러나고 있다. 폴크스바겐 상반기 국내 판매량은 지난해 대비 33.1% 급감했다.

서양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거짓은 비열한 자의 본능”이라 말했고, 동양의 철학서 덕전은 “거짓의 결과는 빈곤 뿐”이라 답했다. 잘 나가던 피노키오의 높은 콧대가 언제 꺾일지. 회장의 주먹만 피하면 정녕 피노키오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낼 수 있을까. 굴(屈)을 버리고 열(劣)을 택한 행로의 끝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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