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후견인 재판과 경영권분쟁 분리시키려는 의도" 해석도
신격호(95)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치매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신동주(62)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측도 "예방차원에서 복용하고 있다"고 말해, 이를 인정했다. 롯데그룹 측은 "불법 개인정보 유포"라며 신 전 부회장을 맹비난했다.28일 뉴시스는 신 총괄회장이 지난 2010년부터 치매약을 복용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신 총괄회장이 처방받은 약의 구체적인 약품명까지 공개했다. 신 전 부회장 측도 복용 사실을 인정했다. 김수창 변호사는 "2010년부터 분당서울대병원 등에서 아리셉트라는 약을 처방받아 드시고 있다"고 말했다.김 변호사는 다만 "이미 재판 초기에 제출된 기록에 나와 있다"며 "법원에서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병원에서 처방한 기록은 있는데 치매 판정을 위한 진료나 검사 기록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라며 "치매 진료기록은 없는데 약을 복용한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병원기록을 감정한) 국립정신건강센터도 '(제출 기록에) 치매 판정을 위한 아무런 정보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며 "그 약을 먹었다고 해서 치매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당시는 신동빈(61) 회장이 신 총괄회장을 관리하고 있었던 시절"이라며 두 가지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좋은 쪽으로 해석해보면 신 총괄회장이 나이가 많으니까 예방 차원에서 복용하게 한 것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악의적 혹은 의도적으로 복용하도록 한 것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롯데그룹은 신 총괄회장 개인 의료정보 공개에 발끈했다. 롯데그룹은 29일 공식입장을 통해 "약물 치료 내역이 신 전 부회장 측에 의해 언론에 유포된 것과 관련해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며 "의료 내역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임에도 불구하고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치료기간, 약물 내용까지 공개한 것은 금도를 넘은 불법 개인 정보 유포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신 전 부회장 측이 직접 치매약 복용 사실을 인정한 것을 두고 재계에선 성년후견인 재판과 그룹 경영권 분쟁을 구분 짓기 위함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성년후견인 지정 여부가 경영권 분쟁에 커다란 변수가 될 것이라는 세간의 시각과 달리 신 전 부회장 측은 두 사안이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그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신 총괄회장 지지'를 명분으로 앞세웠다.
결국 법원이 성년후견인 지정을 할 경우 신 총괄회장 지지는 오히려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신 전 부회장은 '경영권 장악을 위해 판단력이 온전치 않은 아버지를 앞세웠다'는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신 총괄회장은 그동안 법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정신감정을 끝내 거부했다. 당초 입원 예정됐던 날에 병원에 오지 않은 것을 비롯해 입원 뒤에는 사흘 만에 법원 허가 없이 무단으로 퇴원했다. 또 현재 고열로 입원 중인 서울아산병원에서의 정신감정을 실시하자는 제안도 거부했다. 신 전 부회장은 현재 집무실 관리책임, 소송 위임 등 사실상 신 총괄회장 보호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신 전 부회장으로서는 성년후견인 지정이 되더라도 법원 결정이 정신감정 없이 진행됐다는 점을 문제 삼을 가능성이 있다. 의학적 판단이 아닌 법원의 개인적 판단에 의한 결정이라는 점을 앞세우며 경영권 분쟁을 이어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김 변호사도 지난 27일 성년후견인 관련 5차 심리가 종료된 직후 취재진과 만나 "경영권 분쟁과 성년후견인 지정 여부는 전혀 관계 없다"며 "경영권 분쟁은 (법원 결정) 그다음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 전 부회장은 최근 검찰 수사를 계기로 도덕성을 앞세워 신동빈 회장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현재 검찰 수사 선상에서 제외돼 있다.
하지만 여기엔 딜레마가 상존한다. 그가 지금껏 전면에 앞세웠던 신 총괄회장 역시 신 회장과 함께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것. 결국 신 전 부회장으로선 검찰 수사와 관련해 신 회장을 맹공하면서 철저히 신 총괄회장에 대한 언급은 삼가고 있다.
대신 신 전 부회장 측에선 "신 총괄회장이 책임져야 할 부분은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이에 대해 신 전 부회장이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신 총괄회장과 선긋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