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독과점’ 프레임에 갇혔다고 항변하기 전에

지난 22CGV가 서울 여의도에서 영화산업 미디어포럼을 열었다. 서정 CGV대표도 참석해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내놨다. 서 대표는 8000억원을 들인 터키 마르스 인수건도 상세히 설명했다. 중국 영화산업 급성장에 대한 대응책을 밝힌 점도 기자들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얘기는 서 대표의 이른바 스크린 쏠림론이다. CGV는 이 이론 아닌 이론을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주장해왔다.

 

서 대표는 통계를 통해 나름의 근거도 내놨다. 이에 따르면 비수기보다 성수기에 상위권 3개 영화 쏠림현상이 더 심해졌다. 설 연휴가 낀 올해 2월이 대표적이다. 이 당시 상위 3편의 관람객 비중은 전체의 70%. 반면 비수기인 올해 4월에는 비중이 55%에 그쳤다.

 

그러면서 서 대표는 이미 한국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다라며지난해부터 CGV편성위원회를 가동해 투명한 편성을 도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편성은 공정하게 하는데 관객이 특정 시기, 특정 영화에 쏠린다는 논리다.

 

과연 그럴까. CGV가 기자들에게 배포한 자료에는 결정적인 통계가 두 개 빠져있다. 스크린수와 상영횟수다. 그래서 기자가 직접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을 활용해 관련 통계를 찾아봤다. 서 대표가 올해 가장 많은 관객이 찾은 날이라 언급했던 29일과 가장 관객이 적었던 45일을 비교했다.

 

29일은 설 연휴기간이었다. 박스오피스 1위는 검사외전이다. 개봉 7일차였다. 이날 하루에만 118만명의 관객이 검사외전을 관람했다. 이날 상영한 영화 중 매출액 점유율이 71%에 이른다.

 

당시 검사외전이 차지한 스크린수는 1812개다. 이날 검사외전은 전국에서 9451회나 상영됐다. 2쿵푸팬더3’는 스크린수 941, 상영횟수 3963회였다. 3앨빈과 슈퍼밴드의 스크린수는 379, 상영횟수는 800회다.

 

검사외전의 독과점은 한동안 지속됐다. 평일에 스크린수가 다소 줄었지만 1500개 이상을 꾸준히 유지했다. 13일 토요일이 되자 다시 스크린은 1648개로 늘었다.

 

그럼 이제 45일을 보자. 이날 박스오피스 1위는 주토피아. 비수기인지라 관객은 22300명에 그쳤다. 스크린수는 511개다. 2위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배트맨 대 슈퍼맨이다. 21900명의 관객을 모았다. 그런데 스크린수는 998개나 됐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다음 날에도 968개 스크린을 확보했다. 관객은 겨우 18000명에 그쳤다.

 

직전 주말 박스오피스도 확인해봤다. 42일 토요일 배트맨 대 슈퍼맨이 차지한 스크린수는 무려 1135개다. 전국 스크린의 절반 가까운 수치다. 그런데 관객은 147000명 동원에 그쳤다. 당일 박스오피스 1위이지만 비수기인 점을 감안해도 이 정도 스크린에 이 정도 관객숫자는 흥행 대실패에 가깝다.

 

서 대표는 모든 제작사나 배급사는 자기 영화가 가장 좋다고 하지만 관객들이 보는 눈은 다르다고 말했다. 결국 시장의 선택이라는 얘기다. 그럼 흥행에 실패한 배트맨 대 슈퍼맨이 며칠 간 900~1000개 스크린을 유지한 건 누구의 선택인가.

 

CGV는 검사외전과 배트맨 대 슈퍼맨 모두 소비자 호응에 근거해 스크린을 편성했다고 주장한다. 개봉 전에도 예매율과 언론 반응 등을 통해 성적을 가늠해볼 수 있다는 말이다. 스크린 편성은 극장의 자유다. 대신 성적 실패의 책임도 극장이 감당해야 한다. 흥행저조는 CGV의 편성 실패이지, 관객 취향이 특정 영화에 편중된 탓이 아니다.

 

서 대표는 관객이 쏠리는 영화에 어쩔 수 없이스크린이 배정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기자들에게 항변했다. 관객이 많은 영화라면 스크린이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배트맨 대 슈퍼맨을 제친 주토피아는 이후에도 스크린수가 크게 늘지 않았다.

 

다시 2월로 돌아가 보자. 검사외전은 23일 수요일에 개봉했다. 이날 검사외전의 스크린수는 1268개였다. 전날까지 관객수 1위를 차지하던 쿵푸팬더3886개였다. 말하자면 검사외전은 관객의 호응도나 선택을 채 파악하기도 전에 이미 1300개 가까운 스크린을 차지한 셈이다.

 

영화 로봇소리는 검사외전 전날 스크린수 539, 상영횟수 2053회로 매출액 점유율 9% 언저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하루 만에 스크린수 316, 상영횟수 784회로 줄었다. 매출액 점유율은 0.9%로 폭락했다. 이는 극장 측의 흥행 예측에 의한 선택이지 시장에서의 소비자 선택이 아니다.

 

CGV스크린 독과점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있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면서 기자들에게 산업에 좀 더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한다. CGV는 일부 기자들이 산업논리를 이해 못하기 때문에 독과점을 기사화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프레임 아닐까?

 

극장이 돈 벌기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검사외전이 스크린독과점 논란을 낳을 당시 한 전직 영화제작자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연휴인데 경쟁대작이 없어서 강하게 치고 나가야 하는 영화가 있다. 검사외전은 초반에 치고 빠져야 수익이 나는 영화다. 1800개 스크린이면 극장을 거의 다 잡은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덕적으로 독과점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 극장 자체가 불황이기 때문에 이 역시 하나의 비즈니스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기자는 이런 시각에 상당부분 동의한다. 영화가 문화이자 산업이라는 서 대표의 인식에도 지지를 보낸다. 그래서 기자는 평소 제작사와 극장업계가 처한 어려움을 나름대로 이해해보려 애쓴다. 미디어 환경 변화와 IPTV 인기로 극장의 어려움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이날 서 대표도 올해는 세월호도, 메르스도 없는데 지난 2년보다 관객이 더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특정 영화에 관객이 몰리는 이유도 다양하다. 제작사들이 블록버스터와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개봉 시점을 늦추는 경우도 있다. 실제 기자가 만난 한 영화제작자는 그럴 때 무주공산이 생기는 거다. 검사외전은 운이 좋았다극장은 받을 게 없으니 그걸 많이 튼 거다라고 나름대로 극장 측을 변호했다.

 

이 제작자의 말마따나 스크린 독과점이 반드시 극장만의 잘못은 아니다. CGV만의 문제도 물론 아니다. 문제는 그 현상에 대한 시각이다. ‘스크린 독과점이 아니라 쏠림이라는 서 대표의 주장은 관객 탓 프레임혹은 언론 탓 프레임으로 읽힌다. 차라리 그 현상의 복잡미묘한 실체를 설명해주는 게 나았을 것 같다. CGV, 아니 문화기업 CJ를 키워온 건 그렇게 쏠리는 관객들 아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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