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패권주의 극에 달해…유명무실한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도 잇따라
영남권 신공항 선정이 또 무산됐다.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 어느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았다. 지역 패권주의가 극에 달하는 등 갈등과 논란만 양산한 채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된 셈이다.
국토교통부는 21일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검토 용역결과 신공항 입지 결정이 백지화됐다고 밝혔다. 강호인 국토부 장관은 이날 “용역을 수행한 프랑스 파리공항 공단엔지니어링(ADPi)에서 현재의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방안이 최적의 대안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강 장관은 “이번 용역 결과가 항공안전, 경제성, 접근성, 환경 등 공항입지 결정에 필요한 제반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도출된 합리적 결론”이라고 평가했다.
이번에 제시된 김해공항 확장방안에는 기존 김해공항을 단순 보강하는 차원을 넘어 활주로, 터미널 등 공항시설을 대폭 신설하고, 공항으로의 접근 교통망 개선 방안 등이 담겼다.
강 장관은 이를 통해 장래 영남권 항공수요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영남권 전역에서 김해공항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영남권 거점공항 역할을 수행하는데 있어 부족함이 없다고 그는 판단했다.
영남권 신공항 선정은 지난 2003년 동남권 신공항 설립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가 안전성 문제로 무산된 바 있다. 이후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해 다시 재점화됐다. 정부는 지난해 김해공항 국제선 이용객 수가 590만여명으로 연간 최대치(540만명)을 넘어섰다며 신공항을 조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정부는 지난해 1월 영남 지역 5개 지자체와 협의를 거쳐 입지평가에 대한 모든 사항을 외국 전문기관에 일임했다. 결과 수용에 대한 합의도 도출했다. 용역 수행기관은 국제입찰을 통해 공항건설 분야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는 ADPi를 선정했다.
ADPi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등 국제기준과 사례는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문과 5개 지자체가 추천한 전문가 자문회의 개최를 통해 평가기준을 마련했다.
정부는 당초 오는 24일 신공항 입지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영남권 신공항 용역을 맡았던 프랑스 파리공항 공단엔지니어링 ADPi가 지난 20일 입국함에 따라 신공항 용역 결과 발표가 앞당겨질 것으로 관측돼 왔다.
신공항 발표를 둘러싸고 영남 지역간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기도 했다. 그 동안 영남권 민심은 경남 밀양이 최적지라고 주장하는 대구∙경북∙울산∙경남과 부산 가덕도를 지원하는 부산으로 갈려 있었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가덕도가 탈락할 경우 부산시장을 사퇴하겠다고 배수의 진을 치기도 했다. 지난 2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가덕 신공항 외 다른 대안은 없다”며 “정치논리와 이해득실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정치권이 가세해 폭발 직전의 힘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간 영남권 신공항이 인천공항에 이어 제2허브 공항이 될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인천과 영남 지역간 거리가 400km에 불과해 외국 항공사들이 장거리 노선을 취항할 유인이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
일각에선 영남권의 지역 이기주의가 태풍의 눈으로 부상함에 따라 정부가 이를 우려한 나머지 백지화시킨 것이란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부산은 철야농성 돌입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대구는 대정부 결의문 발표 등 대정부 압박작전을 펼칠 것이라고 엄포를 놨기 때문이다.
영남권 신공항 선정이 무산된 데 따른 후폭풍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한 지역 관계자는 “정부가 조성했던 신공항 유치 기대감이 물거품이 됐다”며 “정치 논리에 뒷전으로 밀려난 허수아비 정책이 지역 균형 발전을 고려한 것이 맞느냐”고 날을 세웠다.
한편 국토부는 영남지역 항공수요 대응에 차질이 없도록 이번 발표 결과에 따른 후속조치에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 올해 안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쳐 내년 중 공항개발기본계획 수립에 착수하는 등 김해공항 확장을 위한 절차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영남 지역 거점공항으로서 도로, 철도 등 연결교통망도 충분히 확충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