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에만 20조원 증가…돈 있어도 굴릴 데가 없어

요구불예금이 올해 1분기에만 20조원 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99년 이래 분기별 증가액은 물론 연도별 증가액도 뛰어넘는 최대 규모다.

요구불예금은 예금주가 지급을 원하면 언제든지 조건 없이 지급하는 예금을 말한다. 현금과 유사한 유동성을 지녀 통화성 예금이라고도 한다. 요구불예금이 늘어나는 건 고객인 가계와 기업 모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9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국내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평잔 기준)은 154조1170억원으로 전분기(133조3745억원) 대비 20조7425억원이 늘었다.

이는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최대 규모 증가치다. 이전에는 지난해 1분기 10조1906억원이 최대 증가치였다. 특히 올해 1분기 증가액은 1999년 이래로 연간 최대 증가폭을 보인 지난해 기록(20조620억원)조차 뛰어넘었다.

업계에선 요구불예금이 증가한 이유로 시중 자금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 국내 증시는 수 년째 박스권에 머물며 올해도 2100선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도 지난해보다 둔화하는 등 투자자들이 투자할만한 곳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KB주택가격동향 자료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지난해 1∼5월 4개월간 715만원 상승했지만 올해 같은 기간에는 457만원 상승하는데 그쳤다.

경기 둔화도 심화하고 있다. 지난달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6.0% 감소했다. 수출이 뒷걸음질치면서 4월 중 전체 산업생산 증가율(전년 동월 대비)은 전월(2.4%)보다 낮은 0.8%에 그쳤다.

제조업 평균 가동률도 71.0%를 기록해 2009년 3월 이후 7년 1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결국 경기 둔화 탓에 가계와 기업 모두 적극적 투자를 하지 않으면서 은행의 요구불예금만 기록적인 추세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요구불예금이 늘어나는 건 은행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수신금리가 연 0.1%에 불과해 원가가 적게 들기 때문이다. 요구불예금을 금융기관에 빌려주는 단기성 자금인 콜론(Call loan) 등에 활용하면 은행들은 적어도 12배 이상의 예대마진을 낼 수 있다. 현재 콜금리는 연 1.21~1.23% 수준이다.

또 다양한 후속 거래도 할 수 있다. 요구불예금의 상당액은 직장인 급여통장이나 기업 자금거래 통장이기 때문에 예·적금, 카드 등 다양한 파생거래가 가능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반 예·적금에 비해 요구불예금이 주는 이득은 은행 입장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 0.1%에 불과한 낮은 이자지만 은행들은 기준금리 인하를 구실로 이마저도 낮추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최근 연 0.1%에서 0.01%로 금리를 낮췄으며 다른 은행들도 요구불예금 금리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요구불예금 증가치가 통계 집계 이후 사상 최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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