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재료와 수입선 다변화·제품 다양화에 과감한 투자로 미래 대비
국내 정유·화학사가 원료를 다변화하고 제품군을 늘리는 등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저유가 기조로 실적이 좋은 상황이지만 수익 구조를 늘리고 위험을 줄여 미래에 대비한다는 전략이다.
화학업계는 원재료를 다변화하는 데 박차를 기울이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6월 14일(현지시각)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에탄분해설비(ECC) 기공식을 개최했다. ECC는 미국이나 중동에서 나는 천연가스를 활용해 에틸렌(Ethylene)을 생산하는 설비다.
앞선 지난달 롯데케미칼은 우즈베키스탄 수르길에서 ECC를 완공했다. 롯데케미칼은 이 설비를 활용해 천연가스를 원료로 고밀도폴리에틸렌(HDPE), 폴리프로필렌(PP) 등을 생산할 계획이다.
국내 화학사 중 ECC를 보유한 업체는 거의 없다. 대부분 납사(Naphtha)로 에틸렌을 만드는 NCC를 주로 사용한다. 1분기에 기록적인 저유가로 납사 가격이 낮게 유지돼 NCC를 보유한 화학업체들은 큰 수익을 냈다. 지금의 유가 수준에서는 NCC가 ECC보다 더 수익성이 좋다.
하지만 롯데케미칼은 NCC에 안주하지 않고 ECC를 확보해 천연가스까지 원료를 늘린다는 방침이다.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은 "우즈베키스탄 수르길 프로젝트와 함께 이번 ECC사업을 완공해 납사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겠다“며 ”원료, 생산기지, 판매지역 다변화로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액화석유가스(LPG)로 원재료 다변화를 노리는 화학사도 늘고 있다. 한화토탈은 6월 15일 충남 서산에서 4만톤 규모 LPG탱크를 완공하고 시운전과 LPG 입고를 마쳤다고 밝혔다.
LPG는 최근 중동·아시아지역에서 생산량이 늘어 가격 경쟁력이 높아졌다. 이로 인해 업계에서는 LPG가 납사를 대체할 원료로 주목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 업체는 경우에 따라 납사와 LPG를 혼합해 에틸렌을 만든다.
한화토탈 관계자는 “LPG탱크 완공으로 원료 시황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했다”며 “글로벌 석화업계가 주목하는 원료다변화로 원가경쟁력 강화에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화학업계와 마찬가지로 2분기 높은 실적 기록한 정유업계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정유업계는 주력인 정유사업보다 유가에 영향을 덜 받는 다운스트림 사업에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에쓰오일은 5월 울산에서 잔사유 고도화 콤플렉스(RUC) 및 올레핀 다운스트림 콤플렉스(ODC) 프로젝트 기공식을 개최했다. 에쓰오일은 이 설비를 사용해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남는 잔유물로 프로필렌, 폴리프로필렌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에쓰오일은 2018년 가동 예정인 이 설비에 5조원 가량을 투자했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중국과 중동 정유업계가 석유정제시설을 증설하고 있어 국내 업계가 정유부문에서 수익을 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화학사업 부문에 투자를 계속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은 중국 국영 석유사인 시노펙과 3조3000억원을 투자해 석유화학 제품 연 250만톤을 생산하는 우한(武漢) NCC를 운영 중이다. 다른 자회사인 SK루브리컨츠는 지난해 스페인 정유사 렙솔(Repsol)과 스페인 합작 공장을 설립했다. 이 공장은 하루에 윤활유 1만3300배럴을 생산한다.
이 밖에도 정유업계는 원유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전략도 사용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는 8월까지 이란산 원유를 6583만배럴 수입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37.43% 늘어난 수치다.
회사별로 보면 SK인천석유화학은 지난해 1분기 80만배럴에서 올해 1분기 911만배럴, SK에너지는 517만배럴에서 764만배럴, 현대오일뱅크도 404만배럴에서 610만배럴로, GS칼텍스는 404만배럴에서 610만배럴로 이란산 원유 수입량을 대폭 늘렸다.
이 밖에 리비아, 오만산 원유 비율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8월까지 각각 51.48%, 2583%늘었다. 전문가들은 국내 정유업계의 원유 수입선 다변화가 회사 수익을 늘리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전략이라는 평가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지금은 업황이 좋아보이지만 중국의 석유화학제품 자급률이 높아지는 등 위험 요소가 있다”며 “국내 정유·화학업계의 변화는 가속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