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수·낙하산 사외이사 전횡 견제 장치 포기 지적

박근혜 대통령이 기업 부실과 총수 일가의 독단적 경영을 막기 위한 집중투표제 의무화 공약을 사실상 폐기했다. 정치권과 경제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추진 의지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 사진=뉴스1

박근혜 대통령이 총수 일가의 독단적 경영을 막기 위한 집중투표제 의무화 공약을 사실상 폐기했다. 정치권과 경제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추진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총수·낙하산 사외이사의 독단적 경영을 견제하는 장치다. 

 

집중투표제는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당 이사수와 동일한 수의 의결권을 준다. 이 제도가 의무화되면 소액주주들이 자신을 대표하는 사람을 이사로 선임하거나 대주주가 내세운 후보중 문제가 있는 사람이 이사로 선임되는 것을 견제할 수 있다. 소액주주에 의해 뽑힌 사외이사는 대주주나 총수로부터 독립적이다. 그는 이사회에서 총수·낙하산 사외이사의 독단적 경영을 견제할 수 있다.

현재 기업들은 집중투표제를 정관으로 배제하고 있다. 지난해 공정위에 따르면 대기업 이사회에서 안건 가결률은 99.7%에 달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와 독립적 이사 선임을 위해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공약했다. 2013년 7월 법무부는 단계적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입법 예고했다.

그러나 재계가 이를 반대하고 국회도 20대로 바뀌면서 집중투표제 의무화 법안 추진은 동력을 잃었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 전문가는 "재계 반대로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집중투표제 의무화 추진 의지가 없다"며 "박 정부의 정책 기조는 경제 민주화에서 경제 활성화로 이미 돌아섰다"고 15일 말했다.

김성진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부소장은 "국가 지도자는 기업이 건전한 경영으로 국민 경제에 기여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며 "박 대통령은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공약으로 하기로 해놓고 재벌 총수들 반대로 그만 뒀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공약과 반대로 낙하산 사외이사를 남발했다. 전문가들은 전문성과 독립성이 부족한 낙하산 사외이사가 기업 부실을 더 키웠다고 지적했다. 대우조선해양이 그 예다.

김성진 부소장은 "대우조선해양 부실경영 사태의 한 원인은 낙하산 사외이사다"며 "2008년 이후 새롭게 임명된 대우조선해양 사외인사 18명 중 12명이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정치권 출신 낙하산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해 총수로부터 독립적인 이사가 한명이라도 들어가면 대우조선해양 부실 사태를 일으킨 독단적 경영을 견제할 수 있다"며 "한 명의 이사라도 올바른 소리를 하면 나머지 이사들도 양심있는 전문가로서 대놓고 총수 일가 편을 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기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임명된 대우조선해양의 정치권 사외이사 5명 가운데 조전혁 전 국회의원(18대), 이영배 인천시장(유정복) 보좌관은 현재 사외이사로 재임 중이다. 김 전 의원은 전 사외이사였던 이종구 전 국회의원(17·18대·20대), 고상곤 자유총연맹이사도 정치권 낙하산이라고 밝혔다.

김선웅 경제개혁연대 변호사는 "집중투표제 의무화로 독립적 사외이사가 존재하면 낙하산 사외이사나 경영진과 친한 이사들도 잘못된 의사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한다"며 "소액주주들에게 뽑힌 사외이사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또 그 사외이사가 주주들에게 기업의 문제점들을 보고하면 주주들이 주주대표소송 등을 제기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집중투표제는 총수 일가의 독단적 경영을 견제하는 제도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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