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있는 하도급법이라도 제대로 지켜라"
구의역 사고로 서울메트로 하청업체(은성PSD)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청년이 숨졌다.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주 성과없이 고공농성을 중단했다. 이들은 회사를 상대로 법원 판결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요구사항은 비정규직 전원 정규직 전환이었다. 구 인권위원회 광고탑 위에서 1년을 버텼지만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 내려왔다. 비정규직은 노동시장의 을이다. 그 중에서도 하청 비정규직은 을 중의 을, 슈퍼을이다.
한국 노동시장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어렵고 힘든 업무는 하청업체가 도맡는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 현상이다. 하청업체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이 존재한다. 정규직이 기피하는 위험하고 노동 강도 높은 업무가 비정규직에 전가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전문가들은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불법 하도급 구조를 꼽는다. 불법적으로 다단계 입찰(2,3차 하청), 최저입찰을 하다보니 비정규직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상시적 근로자에 대해선 정규직으로 채용하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다른 임금체계를 적용받고 퇴직금, 4대보험도 가입하지 못하는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32.5%(지난해 8월 기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규모다. 청년층 신규채용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율의 경우, 서비스업은 65.8%, 제조업은 48.2% (한국노동연구원)에 이른다.
일각에선 조선업을 비롯한 일부 제조업의 경우 경기민감업종이라 비정규직 활용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서도 불법적인 하도급은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1차 하청이 재하청을 주고, 2차 하청이 재하청을 주는 방식은 불법이다. 하청업체 근로자 임금은 원청의 60% 수준이다. 말단인 3차 하청 근로자는 원청 근로자가 받는 임금의 약 25%를 받고 일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조선업이나 건설업은 주문 생산방식 업종으로 비정규직 의존도가 높다. 업종 특성상 비정규직 고용이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 등 불법적 요소는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 2차, 3차 하청까지 새끼를 치는 불법 하도급이 비정규직이 확산되는 주원인이다”고 말했다.
최저입찰제로 계약하다보니 하청에선 원가경쟁력이 경영 경쟁력이다. 하청업체는 비정규직 인건비를 최대한 적게 주려고 한다. 이는 안전장비도 부실로 귀결된다. 하청 비정규직에서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다.
이병훈 교수는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산재 사건이 매우 많은 나라다. 산재는 비정규직에 더 많이 나타난다. 기업이 사내 하청 형태든, 임시 알바든, 외주 보급이든. 비정규직에게 주는 일자리가 정규직이 기피하는 3D 업무”라며 “정규직은 위험한 일을 하더라도 노조가 있거나 기업이 안전장치를 잘 갖추는 반면에 비정규직들은 그런 장치를 갖추지 못한 채 일한다”고 설명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구의역 사고는 생명안전업무를 외주로 준 데서 비롯됐다. 생명안전업무인데도 인력이 적게 투입됐다. 하청이 아니라 서울메트로에서 채용해서 운영해야 한다. 그런데 서울메트로 근로자 정원을 행정자치부나 기획재정부가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와 정부도 한국 노동시장의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는 동의한다. 다만 비정규직 문제 심화의 원인이 정규직 고용경직성이라는 입장이다. 그래서 노동 4법을 통과시키자고 주장한다. 청와대 대변인은 노동4법이 통과되지 않았다면서 브리핑 도중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사실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 지난 20년 간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폈다. 문제는 노동지표가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는 더 벌어졌다. 2006년 정액급여의 경우, 비정규직(1108만원)은 정규직(1893만)의 58% 수준이었다. 2015년에는 비정규직(1278만원)임금이 정규직(2589만원)의 49%로 급감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불법하도급 근절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김유선 연구원은 노동4법과 관련 “파견법을 확대하고 제조업 불법 하도급 공정을 합법화시키겠다는 것”이라며 “불법 하도급 인력을 원청에서 직접 고용해야 한다. 정부에서 추진하려는 노동개혁은 기존 불법을 합법화하고 비정규직 문제를 고착화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