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화학사 액시올 인수 제안 철회…당분간 대규모 투자·인수합병 어려울 전망
롯데케미칼이 미국 화학사 액시올(Axiall) 인수 계획을 철회했다. 검찰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전 방위적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탓이다. 이로써 신 회장이 천명한 롯데케미칼의 글로벌 화학사 10위권 진입은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롯데케미칼은 액시올에 제출한 인수제안서를 철회했다고 10일 밝혔다. 인수제안서를 제출했다고 발표한 지 불과 4일 만이다.
회사 측은 그룹이 직면한 어려운 국내 상황과 인수 경쟁이 과열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안을 철회했다고 설명했다.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은 “인수 계획을 철회하는 데 아쉬움이 크나 그룹이 맞이한 상황을 감내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롯데케미칼 측은 이번 인수 계획 철회에 종합적 요인이 작용했다는 입장이지만 그룹 경영권 분쟁이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롯데케미칼은 인수 제안 발표를 하면서 “현재 2조원 이상의 현금을 창출하고 있다”며 자금 조달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낸 바 있다. 이는 형제 간 경영권 다툼이 이번 철회에 주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 회장은 액시올 인수로 롯데케미칼을 매출 기준 국내 1위, 글로벌 10위 화학사로 키우겠다는 계획이었다. 신 회장은 지난달 수르길 가스전 화학단지 준공식에서 “그룹 미래 먹거리인 석유·화학·소재사업을 유통과 같은 비중으로 키울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지난해 경영권 다툼 속에서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나 삼성SDI 케미칼부문과 삼성정밀화학을 인수한 것이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롯데케미칼은 이번 인수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롯데케미칼이 이번 인수를 성공했다면 보유하고 있는 올레핀 및 아로마틱에서 유도체까지 상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할 수 있었다.
게다가 롯데케미칼은 액시올에 에틸렌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두 회사 간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다. 액시올은 지난해 약 8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원재료인 에틸렌 수급에 어려움이 있었던 탓이다. 롯데케미칼과 액시올의 합병은 두 회사가 안정적인 에틸렌 공급·수요처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였다. 게다가 액시올이 보유한 미국 시장 점유율을 흡수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검찰이 신 회장을 정조준하고 수사를 시작하자 롯데케미칼은 곧바로 이번 인수 제안을 철회했다. 검찰은 10일 신 회장 서울 평창동 자택과 신 회장이 주로 거주하는 곳으로 알려진 서울 가회동 롯데그룹 영빈관도 압수 수색했다. 이어 12일 검찰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신 회장의 자금을 관리하는 이모씨 등 3명을 소환 조사했다.
이에 따라 신 회장은 20일 해외 일정을 마치고 귀국해 비자금 의혹을 풀겠다는 방침이다. 신 회장은 현재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 총회에 대한스키협회장 자격으로 참석 중이다, 이후 14일 그는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액시올과 합작해 설립하는 에탄분해설비(ECC·Ethane Cracking Center) 기공식에 참석한다.
업계에서는 형제 간 경영권 분쟁이 끝나기 전까진 롯데케미칼이 신규 투자나 인수합병을 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한다. 검찰은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 임원에 대해 수사 강도를 높이고 있다. 주요 임원 25명에게 출국금지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은 미국 ECC 기공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법무법인 관계자도 “경영권 분쟁이 풀리기 전에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은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경영권 분쟁이 미국 루이지애나 ECC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한다. 10일(현지시각) 외신에 따르면 롯데케미칼과 인수 경쟁에 있던 미국 화학사 웨스트레이크(Westlake Chemical)가 액시올을 약 38억달러(4조4300억원)에 인수했다.
전문가들은 액시올 최대 주주가 바뀌면서 합작사업에서 생산하는 에틸렌 분배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업계관계자는 “ECC 설비 완공 이후가 문제다”며 “롯데케미칼이 액시올과 계약에서는 생산되는 에틸렌 95%에 대해 지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액시올의 최대 주주가 바뀐 상황에서 에틸렌 분배에 관한 계약이 변경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초 롯데케미칼은 생산한 에틸렌으로 70만톤 규모 에틸렌글리콜(EG) 생산 설비를 가동할 계획이었다. 이번 인수 실패로 롯데케미칼이 생각했던 계획과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다”며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