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손실액 743억원"…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 '배임 혐의' 고발 예고

홍완선(사진 오른쪽)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지난해 9월1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답변을 하고 있다. 홍 본부장 왼쪽은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 / 사진=뉴스1

 

삼성물산 합병 당시 구 삼성물산 주가가 의도적으로 저평가 됐다는 서울고법 판결과 관련해 당시 국민연금의 투자 행태가 검찰 판단을 받게 될 예정이다.

시민단체 '내가만드는복지국가(내만복)'는 삼성물산 주식 투자와 관련해 6월 중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9일 밝혔다. 내만복은 검찰 고발에 앞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오는 10일 배임 의혹에 대한 공개 설명회를 개최해 공동고발인을 모집할 예정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지난해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삼성그룹에 유리한 방식으로 구 삼성물산 주식을 매매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서울고법 민사35부(재판장 윤종구 부장판사)가 지난달 30일 국민연금의 주식 매매 행위가 정당한 투자 판단에 근거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한데 따른 여파다.

재판부는 일성신약 등 구 삼성물산 주주들이 결정을 요청한 주식매수가 산정 기준일을 제일모직 상장 전날인 2014년 12월17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초 삼성물산이 산정한 5만7234원보다 높은 6만6602원으로 결정하며 산정 기준 결정 이유를 "누군가에 의한 구 삼성물산 주가가 낮게 의도됐을 가능성 등을 최대한 배제할 수 있는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내만복은 법원 논리를 적용할 경우 제일모직과 구 삼성물산 합병비율은 당초 1:0.35에서 1:0.414로 재조정된다며 이 경우 국민연금 손실액은 743억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총수일가 이득액은 4485억원으로 계산된다고 밝혔다.

내만복은 논평에서 "국민연금기금은 규정과 절차를 무시하면서까지 합병에 찬성함으로써 가입자들의 소중한 연금재산에 손실을 발생시켰다"며 "이에 부적절한 처신으로 국민연금기금에 손실을 끼친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해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고발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제윤경 더민주 의원도 지난 2일 제일모직 상장일을 기준으로 다시 산정할 경우 합병비율은 1:0.57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입은 손실액이 2130억원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제 의원은 국민연금의 비정상적인 투자 행태가 "자본시장법상 시세조종 혐의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서울고법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관련 투자, 일반적 투자방식과 달라"  

국민연금은 구 삼성물산이 의도적으로 매출을 줄여 낮은 주가를 유지했다고 고법 재판부가 판단한 이사회 결의(2015년 5월26일) 이전 두 달 동안 구 삼성물산 주식을 팔고 제일모직 주식을 사들였다. 당시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총수일가는 제일모직 주식을 42.19% 보유한 데 반해, 구 삼성물산 주식은 1.41% 보유에 그쳤다. 이에 따라 합병 시 제일모직 비율이 더 높을수록 총수일가에 유리한 상황이었다. 

구 삼성물산 주식가격 하락과 제일모직 주식가격 상승에 영향을 끼친 것. 국민연금의 구 삼성물산 주식 보유 지분은 2015년 3월26일 11.43%에서 같은 해 5월22일 9.54%로 낮아졌고, 제일모직 주식은 3월말 5% 미만에서 6월30일 5.04%까지 올라갔다.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이사회는 같은 해 5월26일 합병비율을 1:0.35 비율로 결의했다. 결의 이후 삼성물산 주식은 제일모직 주식의 35%를 초과하는 금액으로 형성 돼 있었다. 국민연금은 이 기간 합병비율보다 고가로 산정돼 있는 구 삼성물산 주식을 매수하고 제일모직 주식을 매도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이 기간에) 구 삼성물산 주식을 매도하고 제일모직 주식을 매수하는 것이 일반적인 투자 원칙에 부합한다"고 지적해 국민연금의 투자가 일반적인 투자 방식과 정반대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민연금이 당시 삼성물산 합병 찬성을 한 과정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당시 국민연금이 자문을 구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합병비율이 구 삼성물산에 불리하게 산정됐다는 등의 이유로 합병 반대를 권고했다. 더욱이 당시 국제의결권자문기구 ISS, 사회책임투자 자문사 서스틴베스트(Sustinvest) 등도 같은 이유로 반대 의견을 냈다.

하지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이전 SK㈜ 합병 당시와 달리 외부인사들로 구성된 주식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 결정 요청 등을 생략하고 내부인사들로 구성된 투자위원회 결정만으로 주주총회에서 합병에 찬성했다. 당시 삼성물산 합병은 국민연금이 반대할 경우 의결정족수 미달로 부결되는 상황이었다. 

◇홍완선 당시 기금운용본부장, '합병 찬성 결정' 전 이재용 만나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보인 투자 행태는 이번 서울고법 결정 이전에도 논란이 된 바 있다. 여러 시민단체와 학자 등이 '전형적인 삼성 봐주기'라며 거세게 비난한 것. 야당도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문제 삼은 바 있다.

당시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지난해 9월1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야당 의원들의 추궁에 합병 찬성 결정 3일 전인 7월7일 이재용 부회장을 만났다는 점을 인정했다. 

홍 전 본부장은 그러면서도 "비밀리에 만나지 않고 기금운용본부 주식운용실장과 책임투자팀장, 리서치팀장과 동행했다"며 "합병과정에서의 공정성 부분을 문의하고 주주 환원정책이나 향후 비전 설명을 듣는 자리였다"고 항변했다. 

이에 김기식 전 더불어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가장 이익을 받을 수 있는 이재용 부회장과 그것을 추진한 미래전략실 사람을 만나서 이해를 구하는 게 선관주의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한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홍 전 본부장이 배임행위에 가까운 행위를 했다"고 맹비난했다. 

아울러 합병비율과 관련해 기금운용본부에서도 적정 합병비율이 1:0.46 정도가 돼야 한다는 내부보고가 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김영환 전 새정치민주연합(현 국민의당) 의원은 "삼성 총수일가 지배력 강화나 경영권 방어에 국민연금이 일조하며 손실을 가져오는 건 중대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홍 전 본부장은 그러나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삼성 미래전략실과 뒷거래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는 당시 국민연금이 보유한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식이 각 1조2000억원가량 됐다며 "물산 합병 비율에서 손해를 봤다는 것은 (동시에) 모직 합병 비율에서 득을 본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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