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주거 안정은 뒷전인 서울시 초고가 장기 전세 임대주택

가계총처분 가능소득(PGDI)이란 개념이 있다. 1인당 평균소득에서 세금이나 연금 등 정부에 내는 돈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국민 개개인에게 돌아가는 몫의 평균이 얼마인지를 산정한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PGDI가 1700만원대라고 한다. 한 사람이 10년 동안 전혀 쓰지않고 모으면 1억7000만원이고, 4인 가족이 모으면 6억8000만원이란 얘기다.

서울시는 지난달 모집한 한 장기전세 임대주택 보증금을 6억7000만원으로 책정하고 입주자 모집에 나섰다. 59㎡(구 25평)짜리 임대주택 입주 보증금이 4인가족 모두가 10년 간 쓰지 않고 모아야 가능한 수준이다. 물론 임대주택 가운데 해당주택의 보증금이 가장 비싸긴 하지만 고가 보증금은 단지 이곳만의 문제는 아니다. 모집공고문을 보면 6억2000만원, 5억3000만원 등 가늠하기 어려운 큰 액수의 임대주택이 여럿 있다. 보증금 5억원 이상 임대주택 수만 따져보면 170개 호에 달한다.

이처럼 5억~6억원대 고가 임대주택이 생겨나고 지원 쏠림현상이 심화되는 이유는 임대주택 보증금 산정방식 때문이다. 최장 20년까지 살 수 있는 장기전세 임대주택 ‘시프트’는 그 종류가 건설형과 매입형 크게 두가지 형태로 나뉘는데, 종류에 따라 각각의 보증금 산정법이 다르다.

매입형은 서울시가 재개발이나 재건축 단지의 용적률을 완화해주는 대신 건설사의 일반분양 물량 일부를 저렴하게 사들여 임대주택으로 내놓는 형식을 말한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건설사로부터 가구당 통상 1억2000만~1억3000만원 정도에 사들였다고 한다. 

 

그런데 서울시는 매입가와는 별개로 인근 부동산 시세의 80% 수준으로 임대료를 산정한다. 또 2년 단위로 계약 갱신할 때마다 보증금 인상 가능성이 있다. 그러다보니 일부 고가 동네 임대주택의 경우 보증금이 5억원을 넘어 최고 7억원에 육박하는 일이 생겨났다. 상당수 가구에선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어서 지원자가 아예 없거나 경쟁률은 아무리 높아도 3대 1 미만이다.

건설형은 서울시 SH공사가 갖고 있는 땅에 주택을 지어 공급하는 형태다. 건설형은 국민임대주택으로 간주해 사업승인을 받는다. 보증금은 매입형과 달리 건설원가 수준만 받고 향후 계약 갱신할 때도 보증금을 인상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때문에  1억 3000만원대에 59㎡(25평형) 전세가 가능하다. 상당수 시프트 지원자들은 보증금이 저렴한 건설형 아파트에 들어가기를 희망하다보니 청약율은 최고 230대 1까지 치솟았다.

임대주택에 입주하고자 하는 이들은 수입이 일정치 않거나 적은 편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그들을 대상으로 강남의 상류층이나 지불 가능할 법한 보증금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이야 전체 시프트 공급물량 2만8013호 가운데 매입형은 2724호로 전체의 10% 수준에 불과하지만, 앞으로는 그 비중이 더 늘어나게 된다. 향후 5년 간 강남3구의 재건축 물량이 쏟아지면서 매입형 시프트 물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임대주택 공급물량이 증가할 것이라고만 홍보한다. 사용가치 없는 공급은 빛좋은 개살구일 뿐인데도 말이다.

“집은 ‘사는 것(BUY)’이 아니라 ‘사는 곳(LIVE)’입니다.” 지난 2007년 서울시가 장기전세임대주택 시프트를 발표하면서 주택의 개념을 소유에서 주거로 바꾸겠다며 내건 슬로건이다. 2년마다 짐을 싸서 이사를 다녀야하는 서민들에게는 저렴한 보증금에 최장 20년까지 살게 해준다니 파격적이었다. 그런데 정책발표 10년째인 지금, 임대주택 보증금을 6억원 이상으로 책정하는 서울시를 보아하니 차라리 사는(BUY)편이 낫겠다. 

 

정책이 당초 시행 목적에 부합할 수 있도록 서울시가 보증금 산정방식을 합리적으로 손질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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