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석유기업 경영난 심화…정제마진 영향 큰 국내 정유업계는 호실적

 

저유가 기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글로벌 거대 석유기업들의 부채가 급증했다. 반면 국내 정유업계는 1분기 높은 실적을 기록했다. / 사진=로열더치셸(Royal Dutch-Shell)

 

저유가 기조가 지속되자 글로벌 거대 석유기업들의 부채가 급증했다. 반면 국내 정유업계는 양호한 실적을 기록했다. 이런 차이가 나타난 이유는 뭘까. 해외 석유사의 수익성은 유가와 직결되는 반면 국내 정유사의 수익은 정제마진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글로벌 거대 석유기업들은 부채가 급증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북미와 유럽 정유사 15곳의 순부채는 3월 말 기준으로 3830억달러(약 456조1500억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970억달러 늘어난 수치다.

기업별로 살펴보면 네덜란드 정유회사 로열더치셸(Royal Dutch-Shell)이 약 700억달러로 순부채 규모에서 1위를 차지했다. 미국 엑손모빌(Exxon Mobil), 셰브론(Chevron), 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가 그 뒤를 이었다. 엑손모빌의 순부채는 지난해 같은 기간 276억달러에서 383억달러로 늘었다. BP도 246억달러에서 306억달러로 부채 규모가 증가했다.

부채가 늘어나자 거대 석유기업의 신용도가 떨어졌다. 미국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4월 엑손모빌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 하향 조정했다. 엑손모빌이 신용평가에서 AA+ 등급을 받은 것은 1949년 이후 처음이다. 앞서 2월 S&P는 로열더치셸과 쉐브론의 신용등급을 각각 A+와 AA-로 한 단계씩 강등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도 이들의 등급을 Aa2로 한 단계씩 내린 바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석유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CNN머니에 따르면 로열더치셸은 지난달 2200명을 해고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부터 이 회사가 해고한 인원은 1만2500명에 달한다. 이는 로열더치셸 전체 고용 인원의 10%다. 엑손모빌도 올해 초 예산을 25% 삭감했다. 시추공 수도 60개에서 16개로 대폭 줄었다. 

반면 동일한 저유가 상황에서 국내 정유사의 부채비율은 줄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 1분기 부채비율은 85.41%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부채비율인 102.1%보다 20% 포인트 가량 줄어든 수치다. 에쓰오일의 부채비율은 104.9%에서 101.2%로, GS칼텍스는 103%에서 102.2%로, 현대오일뱅크는 159%에서 127.5%로 줄었다.

국내 정유사의 실적도 호전됐다.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정유업계 4사의 1분기 영업이익은 1조854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약 2배 늘어난 수치다.

이에 따라 국내 정유업계의 신용등급은 상향 조정됐다. 기업평가기관 NICE신용평가는 4월 SK에너지, GS칼텍스, GS에너지의 등급을 한 단계씩 올렸다. 에쓰오일 신용등급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조정했다. SK인천석유화학 회사채의 장기신용등급은 AA에서 AA+로 조정됐다. SK종합화학 회사채 등급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올랐다.

이런 차이는 글로벌 석유사와 국내 정유사의 서로 다른 사업 구조에서 기인한다. 글로벌 석유사는 자원개발(ENP) 사업을 주로 한다. 원유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ENP사업은 고수익 사업이다. 하지만 유가와 실적이 직결된다. 글로벌 석유 기업은 고유가 시절에는 높은 실적을 올렸다.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투자 규모도 확대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진 저유가 기조에서 원유 판매 실적이 줄고 벌려놓은 프로젝트 등 보유자산 가치가 급락했다. 


반면 국내 정유사는 도입한 원유를 정제하는 사업을 한다. 이런 이유로 국내 정유사 수익은 유가보다는 정제마진(석유제품 가격과 원유가격 차이)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국내 정유업계가 수익성 지표로 삼는 싱가포르 정제마진은 1분기 배럴당 평균 9달러 수준을 유지했다. 유가는 떨어졌지만 수요가 많아 석유제품 가격은 떨어지지 않은 까닭이다. 업계에서는 정제마진이 배럴당 5달러를 넘으면 정유사가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본다.

즉 1분기 지속된 저유가가 거대 원유 공급 기업들의 이익을 갉아 먹었지만 원유를 정제해 파는 국내업계에는 호재로 작용했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유가 하락으로 글로벌 석유사의 제품 가격이 떨어지고 광구 등 보유 자산 가치도 떨어졌다”며 “이는 해외자원 가치 하락으로 한국석유공사의 1분기 부채비율이 급증한 것과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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