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주요 선진국 성과연봉제 도입 제한하고 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7일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 사진=이용우 기자

 

정부는 지난 1월 120개 공기업을 대상으로 성과연봉제를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도입 기관은 임금 인센티브를, 미도입 기관은 내년도 임금 동결 등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9개 금융 공공기관은 지난 30일 수출입은행을 끝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마무리했다. 금융노조는 성과연봉제 도입 과정에서 이사회가 노조 합의 없이 강압적으로 직원에게 동의서 서명을 받아 통과시켰다고 항의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성과연봉제 도입과 관련해 실태 파악을 위한 진상조사단을 꾸렸다. 진상조사단은 더불어민주당 의원 11명으로 구성됐다.더민주 진상조사단은 지난 24일 산업은행과 30일 기업은행을 ​방문했다.​ 한정애 의원은 진상조사단 단장을 맡고 있다.  지난 27일 의원실에서 한정애 의원을 만났다. 

 

한 의원은 "(산업은행) 사측이 직원들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바탕으로 동의서를 징구했다고 발표했지만 현장조사를 실시하니까 압박이 있었다는 증언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개별동의서를 받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개별동의서를 받지 않기 위해서 노조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 의원은 이어 "지난 5월 11일 우상호 원내대표가 금융노조와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과정에 불법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며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를 약속했다"라며 "더민주당에서 금융 공기업을 비롯해 공공기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법 사례들을 수집했더니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지난 5월 19일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게 됐다"라고 더민주 산하 성과연봉제 관련 진상조사단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한 의원은 "성과연봉제가 말은 좋지만 객관적인 성과측정이 불가능하다. 일관된 기준으로 각자 업무와 환경이 다른 직원에게 공정한 평가 잣대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할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금융이나 공공기관은 일반 대기업과 다르다. 공공기관은 협업이 중요하다. 제품을 만들고 수익을 내는 곳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 의원은 정부와 금융당국의 성과연봉제 도입 강행과 관련해 "대규모 조선, 해운업계 부실사태와도 관련이 있다고 보여진다"라며 "천문학적인 자금 부실사태에 대해 책임져야 할 정부 부처 장관과 금융공기업 기관장이 오히려 직원 고액연봉 운운하며 화살을 노동자들에게 돌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의원은 이어 "이슈를 이쪽으로 집중시키지 못하면 전 경제부총리, 금융위원장 등이 책임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에 정부 주문에 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30일 수출입은행은 이사회를 열고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을 의결했다. 수은은 노사 합의는 물론, 직원 개별 동의서를 받는 절차 없이 이사회 의결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결정했다. 앞서 지난 26일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최근 공기업이 노사 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노사 합의하지 않은 것이 불법은 아니라는 법률 자문도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의원은 금융노조 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것은 근로기준법 94조에 따라 명백한 불법이라고 말했다. 한 의원은 "사용자 측은 이것이 불법임을 알면서도 정부가 워낙 세게 밀어붙이니까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따라가는 것"이라며 "얼마 전 있었던 금융위원장 주재 공공기관장 회의에서 임종룡 위원장이 기관장에게 대놓고 면박을 줬다고 한다. 기관장들 사이에 '이렇게까지 해야되나' 하는 푸념이 나왔다고 한다"라고 밝혔다.
 

한정애 의원(사진)을 단장으로 한 11명 더민주 의원은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사를 찾았다. 이들은 사측이 직원에게 개별동의서를 강제로 받아냈다는 노조 의혹 제기와 관련해 현장조사를 벌였다. / 사진=뉴스1
그는 이어 "대법원의 판결을 받으려면 장시간이 소요된다. 그때가 되면 이미 기관장들은 다 바뀌고 정권이 바뀔 수 있다"라며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식인것 같다. 법원에서 불법판결이 날 때쯤엔 이미 성과연봉제를 한참 시행하고 있을 시기이다. 이 때문에 이전의 임금체계로 돌리는 것은 어렵다고 보는 것이 정부와 사측 생각인 것 같다"라고 전했다.

한 의원은 '성과연봉제는 임금총액이 감소하지 않고 다수가 수혜대상인 만큼 근로자 불이익으로 볼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한 의원은 "과거 대법원 판례를 보면 소수와 다수는 중요하지 않다.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해 단 1명이라도 피해자가 있다면 그것은 불이익한 변경으로 보고 반드시 노동조합과 합의를 하게끔 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한 의원은 공공기관만큼 성과중심 평가와 임금체계를 적용하는 기업은 드물다라고 말했다. 그는 "2010년 6월 기재부에서 발표한 성과연봉제 권고안 내용에 따라 많은 금융, 공공기관들이 이미 상당수 성과중심의 임금체계를 도입한 상황"이라며 "정부가 이미 시행하고 있는 성과중심의 평가체계에 더욱 나아가 직원 개인들 간의 경쟁을 심화시키겠다는 것이다.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사람은 당연히 저성과자로 낙인찍혀 해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번에 조사하면서 재밌는 것을 발견했다. 기존에 성과연봉체계를 많이 적용했던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은 엄청난 적자를 내게 됐다. 오히려 성과급제를 가장 적게 적용한 기업은행은 수년째 조 단위 이상의 수익을 내고 있다"라며 "성과연봉제가 기업 생산성과는 최소한 무관하거나 반비례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 의원을 단장으로 한 더불어민주당 진상조사단은 다음 달 2일까지 7곳의 공공기관을 추가 방문해 현장 실태를 파악하기로 했다. 한 의원은 "불법·탈법 행위에 대한 법적 조치들도 마련할 예정"이라며 "국회 차원의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성과연봉제 확산 도입을) 막을 생각이다. 이것이 국회 임무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한 의원은 OECD 회원국 3분의 2가 성과연봉제를 도입했으나 성공사례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주요 국가들은 '금융권 성과주의'를 글로벌 위기 원인으로 지목했다"라며 "영국 정부가 4대 은행과 성과급 규제를 합의고 EU 국가들은 2015년도부터 금융권 임직원에 대한 성과급 상한제와 성과급 회수제를 도입했다. 미국도 2009년부터 과도한 성과급을 제한하는 '성과보상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시행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한 의원은 성과주의 임금체계는 혁파 대상이지 권장 대상이 아니라고 조언했다. 설령 성과연봉제가 좋은 제도라 하더라고 불법적 도입 방식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 의원은 "정부 지침은 법 위에 설 수 없다. 과반수 노조가 있는 경우 노조 합의가 있어야 한다. 정부는 더 이상 불법을 조장하지 말고 노사 자율에 따라 진행토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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