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업계 "국책은행 예산 관리 정부 책임 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전국경제인연합회에 가입한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전경련이 어버이연합을 우회 지원했다는 의혹이 있는 상황에서 국책은행 가입 논란이 증폭됐다. 국책은행의 예산을 심사·승인하는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 등 정부 책임 문제도 제기됐다.
산은과 수은, 기업은행은 각각 1969년, 1976년, 1968년 젼경련 회원사로 가입해 활동해왔다. 이 국책은행들은 지난 한해만 전경련 회비와 지원금으로 각각 1156만원, 2100만원, 2365만원씩 냈다.
산은은 1996년부터 지난해까지 1억5921만원 회비를 냈다. 수은은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2억6529만원 회비와 사회협력비를 냈다. 기업은행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1억1562만원의 회비와 사회협력비를 냈다. 세 국책은행은 그 이전의 회비와 사회협력비는 기록으로 남지 않았다고 밝혔다.
금융권과 정치권은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국책은행이 대기업과 재벌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전경련에 가입, 지원비를 낸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문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국책은행은 공공기관으로서 국민들을 위해 정부 주요 정책을 수행하는 곳"이라며 "이러한 국책은행이 재벌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전경련에 가입해 회비를 지원한 것은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문호 위원장은 이어 "국책은행은 정부와 같다. 이는 정부가 전경련에 가입해 지원한 꼴"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공익과 재벌의 이익은 상충되는 부분이 많다"며 "정부는 재벌의 편에 서거나 이들을 지원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김대업 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재벌과 대기업 이익을 대변하는 전경련에게 산업은행의 피 같은 돈을 퍼줬다"며 "산은은 금융위로부터 은행 살림이 어려우니 성과연봉제 하자고 직원들을 압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작 산은은 정경유착 단체에 돈을 지원했다"고 지적했다.
김대업 위원장은 "산업은행 사측은 전경련을 즉각 탈퇴해 국책은행으로서의 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전경련이 어버이연합을 우회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국책은행 가입 논란이 커졌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국책은행의 전경련 가입은 개발독재 시대의 정경유착 구습이 아직 남아있다는 증표"라며 "최근 전경련이 어버이연합에 불법적으로 뒷돈을 전달해왔음이 밝혀져 충격을 줬다. 이들 공공기관이 낸 회비가 거기에 쓰였다면 이 또한 황당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공공기관은 왜 전경련에 가입했고 전경련과 무엇을 협력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보수 단체 어버이연합에 돈을 우회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어버이연합은 세월호 반대 집회, 국정교과서 찬성 집회 등을 진행했다. 전경련은 어버이연합 지원 여부에 대해 답변을 거부했다.
국책은행의 예산을 심사하고 승인하는 금융위와 기재부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금융위와 기재부가 금융 공기업의 예산을 승인·관리한다"며 "정부가 금융 공기업의 전경련 가입과 지원을 몰랐을리 없다"고 말했다.
이에 금융위 관계자는 "산업은행의 예산 심사를 세세한 부분까지 보기 어렵다"고 답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협회비와 같은 세세한 부분을 따로 금융위에 보고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