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내 임시저장 시설에 대한 구체적 방안도 없어

 

경상북도 경주시에 위치한 월성 원자력 발전소 / 사진=월성 원자력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처리 대책을 다시금 내놨다. 핵연료 처리장 문제는 1983년 이후 9차례나 무산돼 왔다.

 

정부는 2028년까지 처리장 부지를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후보지로 선정될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대한 대응책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아울러 당장 2019년부터 포화되는 원전 내 임시 저장시설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안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5일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연료로 쓰고 남은 물질이다. 강한 방사능을 갖고 있어 고준위 폐기물로 불린다. 사용후핵연료는 30만년이 지나야 천연 우라늄 수준으로 방사능이 줄어든다. 따라서 철저한 관리가 필수다.

◇부지선정 번번히 실패...이번에도 시작부터 난항

정부는 고준위 폐기물 처리 부지를 12년에 걸쳐 공모 방식으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공모 지역이 없을 경우, 정부 직권으로 처리할 방침이다. 2028년까지는 최종 부지를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산업부는 예정대로 부지선정 절차가 진행되면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은 2035년부터, 영구처분시설은 2053년부터 가동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한 고준위 방폐물 정책은 1983년부터 9차례에 걸쳐 추진됐다. 하지만 부지 선정 과정에서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됐다. 특히 지난 2004년에는 부안군수가 지역여론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방폐장을 유치하려다 유혈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는 고준위 폐기물을 원전 내 수조에 임시로 저장하고 있다. 그러나 2019년 경북 월성 중수로 원전을 시작으로 2024년 경수로 원전인 한빛원전과 고리원전 임시저장소가 포화상태에 이른다. 한울원전과 신월성 원전도 2037~2038년이면 포화된다.

이번 사용후핵연료 부지 선정 과정은 시작부터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원전에서 사용한 장갑 등 저준위 폐기물 처리장인 경주 방폐장 부지를 선정하는데만도 20년이 걸렸다. 최종 준공까지는 30년이 소요됐다. 정부는 12년안에 부지를 선정한다는 계획이지만 상대적 위험도를 감안할때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월성1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습식저장조/자료=한국수력원자력

◇원전 내 임시저장 시설에 대한 구체적 방안 없어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 계획에 대해 비판적이다. 이번 계획안에 구체적 방안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계획안에는 고준위 방폐물 관리시설을 건설할 부지 선정에 최소 12년을 소비하겠다는 등의 기간만이 명시됐다. 언제부터 시작한다는 등의 구체적 실행 방안은 담겨 있지 않았다. 아울러 원전 내 임시저장 시설이 포화되는 2019년 이후부터 발생하는 고준위 폐기물에 대한 구체적 방안도 부족한 상황이다.

정부는 중간저장시설이 가동되는 2035년 이전에 발생하는 고준위 폐기물의 경우, 원전 내 임시저장 시설을 확충해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번 계획안에는 구체적인 건설 계획이나 해당 지역 주민들에 대한 보상 방안이 담겨 있지 않았다.

앞서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점검하던 공론화위원회 소속 위원들도 지난 25일 성명을 통해 “각각의 시설이 구체적으로 언제 건설돼 운영될 것인가를 명시하는 대신 건설·운영까지의 소요기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운 면이 있다”고 밝혔다.

환경단체의 반발도 심하다. 환경운동연합은 정부가 기본계획안을 발표한지 얼마되지 않아 비판 성명서를 발표했다. 과거 경주방폐장 건설과정에서 겪었던 지역 주민들과의 분쟁이 다시금 재현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정부의 이번 계획안은 시작부터가 잘못됐다”며 “당장 부지선정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기존 원전 내 임시저장 시설 확충에 대한 구체적 방안부터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실적으로 당장 고준위 폐기물을 기존 원전 내 임시시설에 저장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계획안에는 해당 지역 주민들의 보상 문제나 추가시설 건설 방안 등 구체적인 계획이 빠져있다”며 “정부는 경주 방폐장 선례에서 보듯, 지역 주민들과의 신뢰관계부터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제남 정의당 의원도 26일 논평을 통해 정부의 기본계획안을 비판했다. 김제남 의원은 “고독성물질인 고준위 폐기물을 어떤 방식으로 안전하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며 “이는 지금까지 부지선정에만 몰두해 수없이 많은 지역갈등과 사회갈등을 유발해 왔던 과거 정부의 방식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원전 내 임시저장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고준위 폐기물 문제를 지금처럼 졸속처리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사회적 합의기구를 구성해 국민의 의견이 반영된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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