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보사 미지급 자살보험금 2465억원

권순찬 금융감독원 부원장보가 23일 금융감독원에서 자살보험금 지급 관련 금감원 입장과 향후 처리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1

금융감독원이 생명보험사에 "소멸시효 2년이 지났더라도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금감원은 자살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거나 지연한 회사와 임직원을 제재하기로 했다. 보험회사가 미지급한 자살보험금은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2465억원에 달한다.

금감원은 23일 '자살보험금 지급 관련 금감원의 입장 및 향후 처리 계획' 발표를 통해 "보험사들이 보험 청구권 소멸시효(2년)와 관계없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살보험금 관련 논란은 2014년부터 이어져 왔다.

금감원에 따르면 과거 생보사들은 지난 2002년(ING생명 최초판매)부터 종신보험에 재해사망 특약을 붙여 판매해왔다. 당시 재해사망 특약 약관에는 ‘특약 보장개시일로부터 2년이 지난 뒤 자살한 경우에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생명보험사는 뒤늦게 약관 작성에 실수가 있었다며 자살을 재해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재해사망보험금을 신청한 계약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일부는 일반사망보험금만을 지급해왔다. 보통 재해사망 보험금은 보통 일반사망보험금의 2~3배에 이른다.

금감원은 ING생명 등을 제재하면서 약관에 명시된 대로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자살에도 특약 보험금을 주는 보험 계약만 280만건에 달했다. 이에 생보사들이 반발하면서 소송전으로 나섰다.

진통 끝에 지난 12일 대법원은 생보사들이 약관에 기재된 대로 자살에도 재해사망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미지급 보험금의 80%를 차지하는 소멸시효경과 계약들에 대해서는 아직 판결이 나지 않았다. 보험사들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은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험 계약자들은 재해사망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2년이 지나도록 신청하지 못한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ING생명·삼성생명 등 14개 보험사가 미지급한 자살보험금은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2465억원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이 78%(2003억원)에 이른다.

또 보험회사들이 지급을 미룬 자살보험금에 대해서는 약관에 명시된 이자율(10% 내외)로 지연이자를 따로 줘야 하는데, 이 금액만 578억원에 이른다.

소멸시효는 일정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경우 그 권리가 소멸하는 기간을 의미한다. 상법상 보험금 청구권 소멸시효는 2년(2014년 개정으로 그 이후엔 3년)이다. 보험계약자가 2년 이내에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으면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을 지지 않게 된다.

권순찬 금감원 부원장보는 "보험사의 귀책으로 특약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멸시효가 지났더라도 추가 지급을 해야 한다"면서 "소멸시효에 대한 민사적 판단을 이유로 자살보험금 지급을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보험사는 전문가 집단이며 소비자에게 상품을 판매하면서 이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변명거리가 될 수 없다"며 "보험사가 신의성실 원칙에 입각한다면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도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 보험금 지급을 미룰수록 신뢰만 떨어질 뿐"이라고 주장했다.

금감원은 자살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거나 지연한 회사와 임직원을 제재하고 각 회사에서 보험금 지급 계획을 받기로 했다. 지급률이 저조한 회사는 현장 조사하기로 했다.

또 보험사의 귀책으로 보험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경우 소멸시효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관련법 개정을 건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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