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상품 판매 실적평가 도입에 불완전판매 성행
금융권 성과주의를 도입한 해외 은행들이 고객서비스 질 하락과 불완전판매 성행 등 부작용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노조는 금융위원회가 금융개혁 핵심과제로 꼽은 성과주의가 조직 문화를 어지럽혀 결국 은행 수익을 떨어드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기수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금융당국은 금융기업에 성과주의를 통해 매년 전체 직원 중 10%를 저성과자로 만들어 내라고 요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직원을 일반기업 판매 직원과 같다고 보기 때문에 이런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 위원장은 "금융권 특성상 생산직처럼 직원 성과를 일률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라며 "결국 직원들의 상사 불신, 직원 간 협력 상실 등 조직 문화를 어지럽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성과주의가 도입되면 창구 직원은 자금력을 가진 고객만 집중해 상대할 것"이라며 "윗선에 잘 보이려는 이런 행동은 결국 불완전판매를 유발하고 기업 순익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성과 보상체계가 합리적이지 못하면 소비자불만 증가와 불완전판매 성행 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규복 한국금융연구원(KIF) 연구위원이 작성한 '금융상품 판매 직원에 대한 성과보상제도 개편 해외사례 및 시사점'에 의하면 영국 금융당국은 지난 2012년 22개 금융회사 보상체계에 대한 실태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금융상품 판매 직원 보상체계가 판매 서비스 질을 높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위원은 자료에서 "영국 등 선진국 사례를 보면 금융사 직원 보상체계가 소비자 만족보다 판매실적 등에 편향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금융상품 판매직원 보상체계가 소비자만족을 위한 판매서비스 질 구현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판매서비스 질을 고려할 수 있는 평가능력이나 지배구조 등도 미비하다"고 밝혔다.
특히 금융권 성과주의가 과도한 영업 경쟁을 부추겨 서비스 질을 저하하고 불완전판매 유발 등으로 금융소비자 피해를 양산할 것이란 비판도 제기됐다.
이 연구위원은 "실적 보상만으로 급여가 지급되도록 설계된 보상체계, 할당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 기본 급여가 상당히 감소하도록 설계된 보상체계는 판매직원들에게 소비자 만족보다 판매실적에만 과도하게 집중하게 한다"고 평가했다.
영국 로이드 TBS 은행과 스코틀랜드 은행은 지난 2012년 공격적인 성과 인센티브제를 도입했다가 불완전판매 등으로 고객 피해를 일으켜 영국 금융당국으로부터 28억파운드 과징금을 추징 당했다. 영국 은행들이 2000년 이후 불완전판매에 따른 벌금 등으로 금융당국에 지불한 비용은 385억파운드(약 6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는 성과주의가 은행 간 경쟁에 불을 붙이고 있다는 조사도 나왔다. 국제 회계법인 KPMG가 2009년 경영진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2%는 성과주의 인센티브 제도가 2008년 금융위기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평가했다.
아일랜드 중앙은행도 성과주의와 관련해 2014년 자국 은행, 보험, 금융투자기관 등 15개 금융회사를 조사했다. 그 결과 창구 직원을 대상으로 한 성과 평가기준이 질적인 판매실적이 아닌 양적인 판매실적에 치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평가가 판매규모, 수익, 판매 할당량 달성에 기초한 반면 고객 서비스 질 향상은 상대적으로 강조되지 않았다.
이재은 하나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은행권 성과주의 도입의 영향과 전망' 보고서를 통해 "성과주의 임금체계 개혁의 성패는 사용자와 노동자가 모두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성과평가 체계 확립에 달려 있다"며 "현장과의 소통을 통한 자발적인 동참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은행권은 아직 강한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개인과 조직성과에 비탄력적인 인건비 상승이 은행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은행 관계자는 금융권 성과주의 도입에 따른 이와 같은 우려에 "성과주의가 시중은행 전체에 도입되면 이 문제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자동차 판매하듯 은행 직원을 금융상품 판매량으로만 평가하면 불완전판매 등에 있어서 은행은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든 은행 직원이 야구 선수로 치면 '4번 타자'가 아니다. 직원 성과를 판단할 때 업무종류와 능력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라며 "직원에 대한 평가 항목은 금융사와 노조가 구체적으로 협의해 나갈 부분"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