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2020년까지 에너지 밸리 조성

전남 나주에 위치한 한전 본사(왼쪽)에는 태양광 발전 시설(오른쪽)이 설치 돼 있다. / 사진=원태영 기자

서울역서 KTX를 타고 2시간여를 달려 전라남도 나주역에 도착했다. 나주역에서 빛가람 혁신도시까지는 10㎞남짓. 도시로 향하는 버스가 있었지만 배차간격이 30분 이상이다. 기자는 대기하고 있던 택시에 올랐다. 

 

택시를 타고 15분 이동하자 저 멀리서 한국전력공사 나주 본사가 그 위용을 드러냈다. 그 주변에서 한전 자회사인 한전KPS와 한전KDN도 확인할 수 있었다. 혁신도시 내 공기업 건물은 직사각형이 아니었다. 곡선을 활용해 미래도시에나 있을법한 외관을 뽐냈다. 


개인택시 기사 나현균(57세)씨는 “혁신도시가 생기고 지역에 활기가 돈다”고 말했다. 그는 “손님 70%이상이 공기업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며 “한전이 이 지역으로 이전한 후 매출이 2배 이상 뛰었다”고 밝혔다.

혁신도시는 지방균형발전의 일환으로 건설된 미래형 도시다. 정부는 2005년 이후 수도권에 소재하는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했다. 11개 광역시·도에 10개 혁신도시가 건설중이다. 이중 빛가람 혁신도시는 녹색건강식품 개발 및 녹색전력 연구개발(R&D) 기반 육성에 초점을 맞춘 곳이다.

지난 2013년부터 한전을 비롯한 한전KPS, 한전KDN, 전력거래소, 국립전파연구원, 한국농어촌공사 등 14개 공기업이 이전을 완료했다. 한국인터넷진흥원과 농림수산식품기술 기획평가원도 이전을 준비중이다.

◇한전, 에너지 밸리 조성에 박차

기자는 가장 먼저 한전 본사를 방문했다. 한전 본사 건물은 31층이다. 빛가람 혁신도시안에서 가장 높은 층수를 자랑했다. 꼭대기에 위치한 스카이라운지로 들어서니 도시 전망이 한눈에 보였다. 한전 관계자는 “1년 전과 비교하면 엄청 발전했다”며 “최근 아파트와 상가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다”고 말했다.

한전 1층에는 임직원과 지역 주민을 위한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먼저 대강당이 눈에 띄었다. 한전은 CGV와 협약을 맺고 매달 정기적으로 대강당에서 영화를 상영한다. 반대편에는 도서관이 자리했다. 이 시설 역시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있었다.

본사 건물을 나오자 한전이 운영하는 피라미드 모양의 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박물관에선 한전이 진행중인 에너지 관련 사업과 신기술을 감상할 수 있었다. 본사 근처 주차장에는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었다. 건물을 자세히 살표보니 본사 지붕과 창문옆에도 태양관 패널이 붙어 있었다. 

 

한전 관계자는 “한전 사옥 전력사용량 중 40%가 신재생 에너지로 만들어진다”며 “삼성동에 있을 때 보다 여름을 시원하게 나고 있다”고 말했다. 

 

빛가람 혁신도시 중앙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시 전경(왼쪽). 한전 박물관에서는 관람객들이 직접 전기차 충전을 경험해 볼 수 있도록 전기차 모형(오른쪽)이 전시 돼 있다. / 사진=황의범 기자

한전은 빛가람 혁신도시를 에너지 밸리로 만들고자 한다. 빛가람 에너지 밸리는 전세계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주도하는 미국 실리콘 밸리를 본떠 만든 에너지 전문 산학단지다.


에너지 밸리는 전력기술을 바탕으로 태양광, 풍력과 같은 신재생 에너지, 에너지 저장 장치(ESS), 지능형 전력망인 스마트 그리드, 전기차 등 미래 유망 신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형태의 산업 생태계 형성을 핵심 과제로 삼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77개 기업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지난 3월에는 28개 업체를 추가해 105개 기업을 유치했다. 이를 통해 5000억원 규모 투자와 4000명 일자리를 창출했다. 한전은 2020년까지 입주 기업수를 500개로 늘릴 계획이다. 입주기업은 한전과 기술협약을 맺어 기술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전라남도는 규제를 완화하고 지역 은행은 금융 지원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한전은 에너지 밸리 조성과 함께 세계 진출도 계획 중이다. 한전 관계자는 “에너지 밸리 설립 목적은 먼저 지방을 발전시키고 이후 전력 신산업을 키워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라며 “이를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이라고 한다”고 밝혔다. 글로컬리제이션이란 한국전력이 세운 중장기 계획으로, 글로벌(Global)과 지방(Local)의 의미를 더한 축약어다. 지방을 중심으로 세계 경쟁력을 구축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직원들 대체로 만족...주말엔 여전히 ‘유령도시’

기자는 빛가람 혁신도시 내에 위치한 공기업들을 차례로 방문했다. 혁신도시에 위치한 대다수 공기업들은 2014년 중순경에 이곳으로 이전했다. 그전까지는 대부분이 서울근교에 위치해 있었다. 서울에서 머나먼 전남 나주까지 생활터전을 옮겨온 직원들 생활은 어떨까.

이제 내려온지 1년이 지났다는 김모씨는 “처음엔 허허벌판이라 막막했다”며 “지금은 아파트와 상가들이 많이 건축돼 도시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40대 가장이다보니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게 불편하다. 그는 “주말마다 가족을 만나러 서울로 올라간다”며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점 외엔 큰 불편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기업 직원 이모씨는 “처음에 내려왔을때 주변 축산농가 악취 탓에 여름에도 창문을 열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지금은 나주시가 축산농가를 옮겨 악취문제가 해결됐다”고 밝혔다.

지난해까지 나주 혁신도시 입주 기업체와 주민의 최대 민원은 호혜원 축산악취 문제였다. 호혜원은 나주혁신도시 경계에서 600m 가량 떨어진 한센인 자활촌이다. 돼지와 소, 닭·염소 등 가축 14만여마리를 기르면 생계를 꾸리고 있었다. 그러나 가축분뇨에서 나오는 악취 때문에 혁신도시 정착에 걸림돌이 돼 왔다. 나주시는 지난해 8월 해당 주민들과 축산업 이전 및 폐업 보상에 대해 합의를 이끌어 냈다.

기자가 만나본 대다수 40~50대 직장인들은 혁신도시 생활에 대체로 만족한 듯 보였다. 특히 도시 자체가 조용하다보니 한적한 생활을 즐기기에 좋다는 입장이 대분분이었다. 1년전까지만 해도 가로등 부족, 흙탕물이 나오는 수돗물 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해결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대다수가 주말 부부로서 고충을 토로했다.

 

최근 혁신도시에서는 건축중인 건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사진=황의범 기자

반면 20~30대 젊은 직원들은 여전히 혁신도시 생활에 불만을 나타냈다. 20대 직장인 김의범(29·가명)씨는 나주에 내려온지 이제 막 3달째다. 김씨는 “서울서 오래 살다 내려오니 친구들이 있는 서울로 주말마다 올라가게 된다”며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셔틀버스가 있지만 불편한 건 사실이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주변 식당 물가가 서울과 비교해 높은 편”이라며 “기숙사 생활 역시 선배들은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원룸을 지원해주는데 비해 신입은 3~4명 정도가 함께 아파트에서 함께 생활한다”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또 다른 20대 직원인 박모씨는 “회사 특성상 서울에서 행사가 많다. 일주일에 2~3일은 서울에 있다”며 “서울과 나주를 오고가는 생활이 너무 불편하지만 이제는 이골이 났다”고 말했다.

빛가람 혁신도시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주말에 유령도시로 변한다는 것이다. 빛가람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한 공기업 직원은 “금요일만 되면 진풍경이 펼쳐진다”며 “회사앞에 서울로 올라가는 셔틀버스들이 빼곡히 도로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대중교통 문제도 해결해야될 문제점 중 하나다. 기자가 혁신도시에서 3시간 가량 걸어다니면서 마주친 버스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한 직원은 내려온지 2주만에 자가용을 구입했다며 교통수단의 불편함을 기자에게 토로했다.

한전KDN 관계자는 “혁신도시는 이제 막 시작 단계”라며 “지난 1년간 큰 변화가 있었듯이 앞으로도 문제점들이 점차 개선돼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전의 에너지 밸리 조성과 관련해 “지금까지 계약하고 입주한 기업들을 보면 한전이 목표한 바를 충분히 이룰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전은 빛가람 혁신도시를 미국 실리콘 밸리나 일본 도요타 시티처럼 특화된 도시로 만들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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