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달러 오가던 국제유가, 5개월 만에 70달러 이하로 하락
3분기 구입한 원유로 현재 제품 생산···“제품 만들수록 손해”

SK이노베이션 울산CLX 전경. /사진=SK
SK이노베이션 울산CLX 전경. / 사진=SK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정유업계가 1분기 만에 또다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올해 3분기에는 국제유가와 수익지표인 정제마진의 상승으로 실적 호조가 나타났지만, 유가가 급락하기 시작하면서 재고평가손실까지 우려해야 하는 처지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무력 충돌로 올해 3분기 국제유가는 배럴당 90달러를 넘기며 100달러 돌파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4분기 들어 일시휴전 등의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유가가 빠른 속도로 내려가고 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3일(현지시간) 거래된 내년 1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인도분 가격은 69.47달러다. 이달 6일 69.38달러를 기록해, 올해 7월 3일(69.79달러) 이후 5개월 만에 70달러 이하로 하락한 것이다. 유가 하락의 주요 원인은 국제정세의 변화와 함께 중국의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원유 수요가 크게 줄어서다.

유가하락에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속앓이 중이다. 앞서 90달러 수준에 확보한 원유로 석유 제품을 생산해야 하는데, 현재 판매 가격이 크게 낮아진 상황이어서 손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유사들은 원유를 이송·정제하는 동안 유가가 하락하면 재고를 손실로 처리해야만 한다. 이를 ‘재고평가손실’이라고 한다. 3분기에 사들인 원유 가격 대비 유가가 30% 이상 낮아지면서, 4분기에 손실로 반영될 예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동 원유가 배로 우리나라에 운송되는 기간은 평균적으로 20일”이라며 “국내 생산라인에 도착해 정제 후 제품으로 만들어져 주유소 등에 납품되는 시기까지 고려하면 원유 수입부터 제품 판매까지 일반적으로 2~3개월이 걸리는 만큼 3분기 유가가 현재에 적용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주유소에 이달 7일 시민들이 주유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초구의 한 주유소에 이달 7일 시민들이 주유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유가급락으로 정제마진 하락에 더해 재고평가손실까지 늘어난 현재 상황은 당분간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정유업계가 원유 재고를 지켜보며 한숨만 쉬는 이유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의 4분기 실적은 재고평가손실로 전분기 대비 40%가량 영업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의 4분기 예상 영업이익은 7434억원인데, 3분기 대비 45% 감소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에쓰오일의 영업이익은 44%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전유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경기침체와 소비위축, 고금리 등의 불안정한 주위 여건이 계속될 전망”이라며 “유가상승 국면으로 전환되기까지 정유 기업의 실적개선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유사들은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감산을 통해 ‘재고털이’에 집중하며 유가회복을 기다리고 있다. 단, 국제유가의 추가 하락 전망이 지배적이어서 고정비 절감 등으로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기에 나선 모습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4분기 재고평가손실을 아직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유가가 크게 하락하면서 상당한 손해가 발생할 것은 확실하다”며 “겨울 성수기에 진입한 만큼 난방유를 최대한 판매해 실적방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