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영향력 증대 불구 재정 운영 불투명 지적···당정 회계 투명화 법안 추진
美·英·獨 등 노조 회계 해외사례 제각각···“勞·野 반발 커 정치구호로 끝날 듯”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노동조합 재정 운영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회계 투명화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당정은 조합원의 회계장부 열람권을 강화하고 회계감사 자격을 강화하겠단 방침이다. 노동계 반발이 거세 추진 동력을 얻으려면 야당 설득이 필수지만 국회 논의는 사실상 멈춰있다. 여야 간 접점을 찾기도 쉽지 않아 정치적 구호로 그치며 폐기 수순을 밟을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는 모양새다. 

2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노동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노동조합의 사회적 영향력도 커졌으나 재정운영이 불투명하단 비판이 나온다. 이는 회계감사원 자격, 선출에 관한 규정이 미비하고, 노조 회계 관련 일반 조합원의 권한이 제한적인데 따른 결과란 지적이다. 현재 조합원이 노동조합에 요청할 수 있는 자료 범위가 불명확하고 조합원 요구로 회계감사 실시도 불가능한 실정이란 것이다. 

이에 당정은 조합원의 정보요구권 강화, 회계감사원 전문성 강화, 회계정보 공개 강화 등에 방점을 둔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김형동·김성원·하태경·정우택 등 여당 의원 중심으로 노조회계투명화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조합원 열람권 명시·감사 자격 강화···야당·노동계 반발에 논의 제동

이들 법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회의록과 장부 등 회계 관련 정보의 보존기한을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고, 조합원이 열람할 수 있는 회계 관련 정보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회계감사원의 자격을 강화하고 선출 방법을 구체화했으며 회계감사 실시 사유를 확대했다. 결산결과, 운영상황의 행정관청 보고 의무를 강화하고 정보통신망을 통한 회계공시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도 담았다. 해당 규정 위반시 처벌조항도 적시했다. 

당정은 노조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법안 처리가 시급하단 입장이나, 국회 논의는 사실상 멈춰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당정의 의견이 담김 법안은 지난 5월 법안소위에 회부됐으나 이후 논의는 멈춰있다”며 “여야간 쟁점이 큰 사안이다 보니 접점을 찾기 쉽지 않다. 회기내 통과가 쉽진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주류 노동계와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권은 부정적으로 본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는 노조 회계내역을 조합원이 아닌 정부에 보고하라는 것으로 노조 자주성을 침해하는 위법적인 내용”이라며 “노조를 비리 집단으로 매도해 노동개악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노동계 관계자는 “내부 회계에 관한 사항은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고 노조 자치 원칙에 따라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에선 한 발 더 나아가 여당 안을 정면으로 맞받는 법안을 내놓았다. 행정관청이 노조 회계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제출하며 맞불을 놨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부 세금을 받는 노조 회계가 투명해야 한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라며 “그런데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법안은 이런 취지보단 정치적 목적의 노조 때리기”라고 말했다.

/ 표=정승아 디자이너
/ 표=정승아 디자이너

◇미·영 회계보고서 정부 홈페이지 공개···프·독은 공개 여부 노조 자율

해외의 경우 국가별로 노조 재정을 관리, 감독하는 방식이 다소 다르다. 영국은 노조가 매년 정부가 임명하는 인증관에게 연차회계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제출된 연차회계보고서는 영국 노동연금부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일정 규모 이상 노조는 회사법상 기업 회계감사로 임명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자로 회계감사를 실시토록 하고 있다.

미국도 노조가 연차회계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토록 의무를 부여하고 있고, 제출된 연차회계보고서는 미국 노동부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다만, 회계감사원 자격과 요건에 대한 법적 규정은 없다.

반면, 프랑스와 독일은 법령으로 행정관청에 대한 회계보고나 일반인에 대한 회계 공개 의무를 부여하진 않는다. 필요시 노조 규약에서 자율적으로 회계 운용 관련 사항을 정하고 있다. 일본은 노조 재정을 보통 총회나 대의원회에서 회계보고서를 공개하고 언론 등 제3자에게는 공개하지 않는다. 다만, 회계보고 정확성을 위해 공인회계사나 감사법인 등 직업적 자격을 갖춘 회계감사가 확인해주는 증명서를 첨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환노위 관계자는 “노조의 회계투명성을 높이면 노조 운영을 민주적으로 하고 사회적 책임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조합원이 아닌 행정기관이 노조 재정운영 간섭이 지나치면 노조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며 “이해당사자인 노동계나 해외 사례등을 고려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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