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감산 효과에도 지지부진한 수요에 주문량 회복 ‘난망’
“투자 움직임 없는 상황···완만한 U자형으로 수요 회복 더뎌”

주요 장비사 1분기 영업이익 추이. /자료=각사,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이호길 기자] 글로벌 경기침체로 반도체 불황이 깊어지는 가운데 장비업계 업황은 2분기에 저점을 통과하지만, 하반기에도 주문량 증가는 소폭에 그칠 전망이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감산에 동참하면서 3분기부터 반도체 시장이 회복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지만, 극심한 수요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장비업계 본격 반등은 내년 하반기부터 가능하단 분석이다. 소자업체들의 보수적인 투자 기조로 장비사 ‘수주 가뭄’은 올해 내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3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장비업체들은 지난 1분기에 시장 위축의 직격탄을 맞았다. 대표 장비업체인 주성엔지니어링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687억원과 12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5.8%, 59.6%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전 분기(280억원)과 비교해 55.9% 줄었다.

고영민 신한투자증권 책임연구원은 주성엔지니어링 1분기 실적 부진 주요 배경을 “메모리 업황 부진에 따른 고객사들의 투자 공백”이라고 진단하면서 “매출의 50%가량을 차지하는 SK하이닉스향 장비 공급 및 수주가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후공정 장비사인 한미반도체의 1분기 매출은 265억원, 영업이익은 2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8%, 90.2% 급감했다. 고영테크놀러지 실적은 매출 637억원, 영업이익은 9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8% 15.9% 줄었다. 고영테크놀러지는 반도체와 전자제품용 검사기가 주력 제품인 장비사다.

장비업체 실적 부진은 2분기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메모리 반도체 공급 과잉 지속과 파운드리 가동률 감소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종합반도체기업(IDM)이 주문량을 늘리기 어려울 것으로 점쳐지기 때문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주성엔지니어링과 한미반도체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각각 11억원과 138억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96.8%, 68.6% 감소가 예상된다. 반면 고영은 전장과 사물인터넷(IoT) 부문에서 선방해 2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4.8%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한미반도체 2분기 실적 전망에 대해 “지난해 수주 추이로 볼 때 크게 개선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반도체 불황으로 한국, 중국, 대만 등 대부분 지역에서 한미반도체 수주액이 부진하다. 다만 동남아시아 지역에서의 매출과 수주 비중은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장비업계 관계자는 “업황은 2분기가 최악이 될 것 같다. 지난해 가을쯤에는 저점을 올해 1분기로 생각했지만, 수요 회복 조짐이 없어 회복 예상 시점이 계속 늦춰지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주요 업체들의 투자 움직임이 없다. 내년 하반기는 돼야 시장이 살아날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글로벌 반도체 박람회 '세미콘 코리아 2023'을 찾은 업체 관계자 및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글로벌 반도체 박람회 ‘세미콘 코리아 2023’을 찾은 업체 관계자 및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공급 측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생산량 하향 조정으로 수급 불균형이 다소 해소될 전망이다. 다만 장비업계는 반도체 수요 반등 기미가 없단 점에서 주문량 회복 시점을 내년 하반기 이후로 내다보고 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반도체 장비 지출액은 760억달러(101조4220억원)로 전년 대비 22% 감소가 예상된다. 메모리와 파운드리 장비 투자액은 각각 171억달러(22조8200억원)와 434억달러(57조9170억원)로 전년보다 44.4%, 12.1% 줄어들 전망이다.

IT업계 수요 부진에 따라 소자업체들이 투자를 줄인 탓이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올해 글로벌 PC와 태블릿 출하량 전망치는 4억310만대로 전년 대비 11.2% 감소가 점쳐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재택근무와 원격수업 수요가 급증하기 이전인 2019년보다도 낮은 수치다.

올해 스마트폰 출하량 전망치는 11억9280만대로 지난해보다 1.1% 줄어들 것이란 예측이다. 경기 위축에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사(CSP)들이 서버 출하량을 줄이면서 데이터센터에 적용되는 메모리 물량도 감소가 예상된다.

소자업체들도 수요 회복이 관찰된 이후 장비 발주를 재개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는 설비투자 상당 비중을 평택과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 인프라 투자에 집행하고 있어 장비 반입은 속도 조절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전년 대비 50% 이상 삭감해 신규 장비 발주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비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재고 소진이 이뤄져 반도체 다운턴(하강 국면)이 끝나면 시황이 V자 내지는 U자형으로 급반등했지만, 이번 사이클은 그럴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며 “완만한 U자형 형태로 수요가 더디게 회복되면서 내년 4분기가 돼야 업황이 확실히 좋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장비업체들의 올해 목표는 생존”이라며 “적자를 기록해 한계에 이르는 기업들이 속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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