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1년새 30% 하락···정제마진도 정유사 손익분기점 턱걸이
정부, 석유제품 도매가 공개 압박···정유업계 ‘벙어리 냉가슴’
[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유가급락 및 경기침체가 더욱 가중되면서 정유업계의 수익지표인 정제마진도 하락세다. 지난해 만큼 호실적을 기록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데, 정부는 횡재세 논의에 이어 전국 지역별 석유제품 도매가격을 공개하라는 압박까지 하고 있어 정유사들은 ‘벙어리 냉가슴’이다.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의 올해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66.74달러다. 2021년 12월 이후 최저 수준으로 지난해 4월 95.04달러와 비교하면 1년새 28.3달러(29.8%) 떨어진 가격이다.
유가하락 원인은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글로벌 금융시장 탓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이달 10일 파산하면서 경기침체 및 중소 규모 은행의 줄도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및 경기침체로 이어지면서 유가를 끌어내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당분간 유가가 현재보다 더 떨어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오재영 KB증권 연구원은 “SVB를 시작으로 한 미국발 금융위기로 유가 등 원자재 시장의 가격하락이 이어지고 있다”며 “은행 대출 축소 영향으로 경기회복이 지연되면서 국제유가의 회복 속도가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유가하락으로 국내 정유업계 수익의 바로미터인 싱가포르 정제마진도 하락세다. 정유사들은 정제마진 손익분기점을 통상 5~6달러 수준으로 본다. 올해 1월 넷째주 13.5달러까지 오르며 손익분기점을 크게 넘겼던 정제마진은 한달 후인 2월 넷째주 5.7달러로 낮아졌다.
지난해 중순 30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며 호실적을 기록하던 시기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유가하락에 정제마진도 맥을 못 추며 1분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시점임에도 정유사들의 실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온다.
중국의 코로나19 봉쇄완화에 따른 경제회복 기대감에 석유제품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상 만큼의 증가가 나타나지 않고 있어서다. 더욱이 이라크와 쿠웨이트 등의 정유사는 조만간 신규설비 가동으로 생산물량을 늘릴 계획으로 국내 정유사의 수출물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정유사가 예년과 달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휘발유 등 석유제품 도매가격을 공개하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 경제1분과위원회는 오는 24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하는 ‘석유 및 석유대체원료 사업법 시행령 개정안’ 심의를 진행한다.
개정안의 핵심은 전국 평균 석유제품 도매가를 광역·시·도 단위로 세분화하고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유류 도매 가격을 공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산업부는 시장 경쟁이 촉발돼 기름값이 낮아져 물가안정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정유업계와 주유소는 오히려 석유제품 가격이 오르고 출혈경쟁에서 뒤처진 주유소는 폐업·휴업할 공산이 크다고 반박한다. 같은 지역 안에서도 거리에 따른 수송비나 주유소 입지에 따른 임대료 등에 차이가 있는데, 도매 가격이 획일화되는 것은 ‘영업권 침해’라는 주장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지난해와 달리 유가하락으로 휘발유·경유 가격이 안정세를 찾고 있다”며 “2000원대를 웃돌던 판매가가 20~30% 낮아지면서 기름값 안정이 된 상황에 도매 가격을 공개하는 것은 정치 포퓰리즘이나 마찬가지”라고 전했다.